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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 가서

시와풍경사이| 감동이 있는 시 감상-⑮

유 안 진


밤비에 씻긴 눈에
새벽별로 뜨지 말고
천둥번개 울고 간 기슭에
산나리 꽃대궁으로 고개 숙여 피지도 말고

꽃도 별도 아닌 이대로가 좋아요

이 모양 초라한 대로 우리
이 세상에서 자주 만나요
앓는 것도 자랑거리 삼아
나이만큼씩 늙어가지요.
유안진 시인은 여성성과 사회성을 절묘하게 아우르는 시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시편들은 일상의 작은 감동들을 조용하고 따뜻하게 노래한다.
서울대 교수를 명예퇴직하고 지금은 여유롭게 시작을 하고 있다. 「문병 가서」는 우리들의 참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으로 ‘밤비에 씻긴 눈에/새벽별로 뜨지 말’자고, 우리들의 드높아 질 수 있는 수직적 상승 지향성을 경계하고 ‘천둥 번개 울고 간 기슭에/산나리 꽃대궁으로 고개 숙여 피지도 말’자고 수직적 하강 지향성을 경계한다.
삶이라는 것이 이처럼 수직적 지향성에 놓일 때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꽃도 별도 아닌 이대로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만한 삶의 경지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시인은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고통과 갈등들을 극복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초라하면 초라한대로 이승에서 자주 만나자고, 나이만큼 늙어 가자고 앓는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하는 시인의 삶에 대한 겸허함이 돋보인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