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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等에 올라

시가있는풍경| 감동이 있는 시 감상-16

조태일

한사코 밀리고 밀려서
예까지 오른 것이 아니다.
그냥 어머니 같은 품이 그리워서
지나간 세월의 옷자락에
얼굴을 묻고 해가 다하도록
울고파서 오른 것은 아니다.
땅을 치며 발을 구르며
나를 잊기 위해서도 아니다.
날이 청명하면 어떻고
날이 궂으면 어떠랴.
새벽이면 어떻고 한낮이면 어떻고
달 뜨는 밤중이면 어떠랴.
있는 길 피해서,
숲을 헤치고 바윗돌 넘어
이미 떠난 생명들과 나란히
두 손바닥으로 얼굴 가리며
부끄러운 몸 낮추며
오늘도 내일도 또 모레도
쓸데없는 말 참으며
이 하늘 아래 무등에 올라
마냥 뒹굴며 모든 한들을 보듬으리라.
이 우람하고 다정한 정에 묻혀서.


조태일 시인은 <國土>의 시인이다. 그는 국토를 사랑했던 시인이며 가슴에 불을 품고 살았던 시인이다. 술이 좋아 소주에 밥 말아먹으며 가슴에 불이 될 모든 것들을 담았던 시인이다.
그가 무등에 올라 무등을 노래 했다. 무등은 우람한 산이다.
그러나 무등은 산의 의미를 떠나서 존재한다. 무등은 정신적 성지이며 신전이다. 그러므로 무등에 오른 것은 성지의 순례이며 참회이며 한에 대한 서원이다.
무등에 오르면 삶이 겸손해지고 겸손하지 못했던 삶이 부끄러워 몸을 낮추게 된다. 죽은 자들이 떠오르고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새로운 생명으로 현현된다. 무등은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해주는 영산인 것이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