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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서 있는 죽은 나무

시와풍경사이| 감동이 있는 시 감상-17

김혜순

초승달의 눈썹이 깜빡깜빡
열렸다 닫히면서
애무에 젖는다
보이지 않는 구름의 손이
보이지 않는 달의 몸을 만지는 듯
달은 칠흑의 허랑방천으로
천천히 떠밀리면서
깜빡깜빡 죽었다 깨어난다

은은한 숲속의 나무들이
달의 발가락처럼 흔들리는 가운데
어두운 밤의 난간에 기댄
죽은 나무가 아직도 눕지 않고 서서
문틈으로 깜빡거리는
눈썹을 보며
밤새도록 흐르는 달의
살을 훔친다


김혜순 시인은 여류시인으로서는 드물게 난해한 시인이다.

그의 시편들은 중층적이며 다의적이어서 해석의 지평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난해한 시인으로 불리우게 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김혜순 시인은 다양한 시적 방법을 구사할 뿐 아니라 부정과 냉소와 아이러니를 통해 죽음을 읽어낸다.

그런가 하면 강렬한 유희정신을 발휘하기 때문에 즐겁게 읽히는 시세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아직도 서 있는 죽은 나무」는 에로티시즘이 흥겹게 드러나는 시편이다. 초승달과 구름의 죽었다 깨어나는 성애의 묘사가 첫 연의 내용을 이룬다. 그렇다. 성애를 작은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깜빡깜빡 죽었다 깨어나는 초승달은 여성성이다.

둘째 연은 죽은 나무의 관음이 압권이다. 죽은 나무는 ‘문틈으로 깜빡거리는’ 달의 눈썹을 훔쳐보고, ‘밤새도록 흐르는 달의 살을 훔’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음 하는 죽은 나무는 죽은 나무가 아니라 관음 하는 죽지 않은 나무이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