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문화유산을 시민의 기금으로 모아 보전토록 하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이 국내 최초로 용인에서 시도됐던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난개발’에 몸살을 앓던 지난 2000년대 초, 환경정의시민연대가 용인 ‘대지산’ 살리기의 일환으로 지역민과 함께 다양한 운동의 도입을 시도했던 일은 환경운동사의 하나의 ‘사건’이었다. 오늘날 ‘4대강 살리기’에 견줄만한 일이었음에도 세간의 관심이 못 미쳤던 것은 용인이란 지역적 한계와 당시 운동의 주체가 서울을 소재로 한 시민단체였다는 사실이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에 대한 지난 90년대 시민운동 전반에 대한 반성에는 소수 ‘인텔리’ 집단에 의해 주도되던 당시 시민운동을 한마디로 집약하는 ‘쓴 소리’임을 부정할 수 없다. 연장선에서 2012년을 주도하는 용인 시민운동의 정체(停滯)현상은 당연한 일이 돼 버렸고 타 시·군에서 주도되고 있는 ‘거버넌스(協治)’ 체제에 대한 기대까지 못 미치더라도 오늘날 우리 시민운동의 현주소를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리다.
기실 구세대민주화운동의 차별화를 통해 ‘건강한 자본’의 가치를 찾고자 시작됐던 한국의 시민운동은 당시 ‘맑스·레닌’으로 함몰됐던 우리의 대중 운동사에 신선한 반향을 이끌어내기 충분했다. 사회 변화의 새로운 ‘원동력’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반성은 교수·전문가 집단의 전면적 환영과 구심점을 얻으며 합법적인 시민운동의 ‘패러다임’을 이끌며 시민 속으로 다가섰다. 물론 이에 따른 우려도 만만치 않았는데 우리사회의 제(諸)문제에 대한 이견과 접근방법의 차이를 두고 많은 설전이 오가며 시행착오를 겪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같은 우려에도 구세대민주화운동에 적지 않은 염증을 갖고 있던 국민들에게 생활 속에 밀착된 ‘임대차보호법’ 등의 실사구시(實事求是)적 개혁 아이템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난 1989년 한국의 부동산 개혁을 표방하고 국내 시민운동의 효시요 신호탄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의 출현은 그 좋은 실 예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를 기준으로 소위 재야(在野)로 함몰된 구세대민주화운동은 그 ‘원동력’을 잃고 새로운 변화의 중심에 경실련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오랜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가 시작되던 YS시절, ‘금융실명제’라는 적지 않은 개혁을 성공시키며 정부와 끈끈한 밀월(蜜月) 관계를 유지해오던 경실련은 내부의 내홍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 경실련은 성과주의적 ‘백화점식 시민운동’에 반기를 든 박원순(현 서울시장), 조희연(현 성공회대 교수), 김기식(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출범한 ‘참여연대’에 그 패권을 내주게 된다.
참여연대는 대기업의 횡포에 대항하며 고려대 장하성 교수 등과 함께 ‘소액주주운동’을 성공시킨다. 절대 권력 ‘삼성(三星)’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그 힘을 키워가던 참여연대는 시민운동의 차별화 전략을 통해 경실련에 우위를 점하게 되고 경실련은 군소시민단체로 추락하게 된다. 새로운 운동 전략의 고민을 게을리 한 경실련이 몰락은 이미 예견됐던 것으로 시민운동 또한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할 때 그 원동력이 상실된다는 값진 교훈을 얻는 사례로 용인의 시민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구 100만에 육박하고 있는 용인은 그 양적 팽창과 더불어 시민사회의 내실을 다져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지자체의 견제와 감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시민단체의 출현은 내일의 용인을 열어가는 중대한 요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