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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의 세설(細說)

시인들이 가난한 까닭은

<우농의 세설>

<우농의 세설>

시인들이 가난한 까닭은

시를 아는 어려움이 시를 짓는 어려움보다도 더하다. (知詩之難甚於作詩之難) 쉽게 말해서 시를 짓는 것보다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다. 시를 안다는 것은 시인이 시 한편을 지을 때 어떤 환경에서 무슨 생각으로 지었을까 하는 그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는 곧 독자가 시인의 환경과 처지에까지 도달을 해야 만이 시를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흔히 시를 일러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남송 때 학자 조희곡(趙希鵠1195-1242)은 시를 쓰는 자의 입장에서 말하길 “가슴 속에는 만권의 책이 들어 있고 <흉중유만권서 胸中有萬卷書>, 눈으로는 앞 시대의 전적을 봐야하고 <목포전대기적 目飽前代寄蹟> 또 수레바퀴 자국과 말 발자국이 <우차철마적반又車轍馬迹半> 천하의 반쯤은 다녀본 후 비로소 붓을 든다<천하방가불필天下方可不筆>”라고 했다.

한편 소철 <북송 北宋(1009-1066) 소순의 아들이며 소동파의 아우>은 시를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두 가지를 말한다. 독만권서(讀萬卷書)와 행만리로(行萬里路)가 그것이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 밖으로 여행을 다녀온 후에 시를 보면 보인다는 말이다.

시인은 말한다. 시(詩)란 낯 섬에 대한 침투다. 시인이 시를 지을 때 느꼈던 감정을 다 드러내놓으면 좋은 시가 되기 어렵다. 드러내고자 하는 생각이 열개라면 대략 한두 개 정도만 표현하고, 나머지 예닐곱은 행간 사이에 숨겨두어 이를 독자가 나름의 살아온 인생관에 의해서 해석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줘야만 좋은 시다.

<김윤배 시인>은 이를 여운과 함축이라는 의미의 정경교융(情景交融)이라 한다. 사람의 정서와 자연의 경치가 서로 융화됨이다. 즉 신이 창조해놓은 자연을 독자를 위해서 제멋대로 끌어다가 시구절로 만든다는 말이다(차경기의借景寄意). 그 시를 읽는 독자는 감동을 한다. 하지만 시인은 신의 창조물을 맘대로 표현했다하여 괘씸죄로 네 가지 형벌을 받는다. 춥고 배고프고 괴롭게 살다가 병으로 죽는다.

시인들이 대체로 가난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관리를 뽑을 때 시 짓는 것이 필수과목인 이유가 시인의 치열한 시 정신 때문이다. 조물주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자를 위해 시를 짓는 것처럼 국민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말고 멸사봉민(滅私奉民)하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