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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의 세설(細說)

<우농의 세설>

<우농의 세설>

10년의 명불허전

남자의 인생에는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가슴을 에이는 반전이 있어야 한다. 육조시대 진(晋)나라 좌사(左思)는 자(字)가 태충(太衝)으로 공부도 음악도 뭣하나 빼어난 데가 없다. 당시 하급관리인 아버지 ‘좌희’의 성화로 시를 조금은 쓰게 된 후 1년여에 걸쳐 완성했다는 부가 있는데 제나라 도읍이자 제 고향인 임치를 운문으로 노래한 제도 부제도부(齊都賦)다.

당시 좌사의 부를 접한 묵객들은 “곰도 궁구르는 재주가 있더라.”며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말이 오갔다. 못내 서운했던 좌사는 나지막한 소리로 분노를 대신한다. “쳇, 글쟁이가 글로 말하면 됐지(寧書癡唯言書耳)” 그러고서 10년에 걸쳐 완성한 것이 삼도의 부삼도부(三都賦)다. 좌사가 삼도의 부를 쓴다는 말을 낙양에 와서 벼슬을 살고 있는 육기가 듣는다. 육기(陸機)는 삼국시대 오(吳)나라 승상(丞相) 육손(陸遜) 손자이며, 군사령관 육항(陸抗)의 넷째 아들이다. 동생 육운(陸雲)과 함께 이륙(二陸)으로 불렸고, 고영(顧榮)과 더불어 낙양삼준(洛陽三俊)으로 태강지영(太康之英)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런 그였기에 일찍이 그도 삼도의 부를 구상 중에 좌사의 삼도 부 소식을 들은 것이다.

고향에 있는 아우 육운에게 편지를 쓴다. “촌닭이 눈 빼더라고 낙양에 오니 만나는 이마다 입만 열면 제일 문장이라는 구나. 더군다나 북쪽 시골 마을서 올라온 촌것이 삼도의 부를 쓴다는 소문이 있는데 다 쓰거든 술독 덮는 뚜껑에나 쓰려네”라고.

그런데 10년 세월에 걸쳐 삼도의 부가 완성되자 강호는 발칵 뒤집혔다. 황보밀(皇甫謐)은 삼도부를 일러 필세지존(筆勢至尊)이라 했고, 저작랑(著作郞) 장재(張載)는 삼도부중 위도부에 주(注)를 냈고, 중서랑(中書郞) 유규(劉逵)는 촉도부, 오도부에 석(釋)을 단다. 사공(司空) 장화(張華)는 삼도 부에 략해(略解)후 왈, “오호라, 이글은 반장(班長)을 넘었으며 덮으면 여운이 남고 오래두고 읽어도 늘 새롭다.”

반장이란 이도부(二都賦)를 쓴 반고와 이경부(二京賦)를 쓴 장형으로 최고의 문명(文名)을 떨친이다. <진서 문원전(晋書 文苑傳> 필세 지존의 곡절은 뭘까. 가담항어(街談巷語)에 의하면 좌사는 젊은 날 엄청난 부자집 딸과 혼인하는 신데렐라 맨 이지만 추남에 말까지 더듬는 그의 결혼 생활은 일방적 파경 아닌 해고(?)를 맞는다.

10년이면 낙양의 지가를 올릴 테니 기다려달라(十年刻苦洛陽紙貴)는 남편의 애원에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며 떠난다. 그 서운함이 좌사로 하여금 10년 명불허전을 낳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