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2 (화)

  • 흐림동두천 17.1℃
  • 흐림강릉 12.8℃
  • 서울 18.8℃
  • 대전 17.1℃
  • 대구 16.2℃
  • 울산 17.0℃
  • 광주 19.3℃
  • 부산 17.1℃
  • 흐림고창 19.2℃
  • 구름많음제주 23.8℃
  • 흐림강화 15.4℃
  • 흐림보은 15.7℃
  • 흐림금산 17.2℃
  • 흐림강진군 19.2℃
  • 흐림경주시 18.8℃
  • 흐림거제 18.1℃
기상청 제공

우농(愚農)의 세설(細說)

이규보 판 삼백

이규보 판 삼백

 

이사관 아비의 꿈은 평범했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애비 닮은 아들하나 낳아서 좋은 혼처제급 나서 살다가 가끔 아들며느리가 봐준 술상에 둘러앉아서 술 한잔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 그의 아들 이사관이 거제 현감으로 좌천된다.

스승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여고문지(予固聞之) 기소위현지거제자(其所謂縣之巨濟者) 내 일찍이 들으니 거제 현이라는 데는…… 으로 시작되는 위로의 설서(說序)를 써준다.<東國李相國集21說序 送李史館赴官巨濟序. 東文選卷83> 전체 글자 수라야 총314자로 100자 쯤 지나면 설서의 백미가 나오는데 부천욕성취지(夫天欲成就之) 필선시간험(必先試艱險) 대체로 하늘은 한 인간을 성공시키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어려움으로 시험을 해서 간을 본다.

 

본래 이 말은 천장강대임어시인야(天將降大任於是人也)로 시작되는 맹자 고자장구하(告子章句下)에 나오는 말이다. 선 망부 독자였던 맹자의 아비 맹모의 꿈은 장성한 아들과 툇마루에 앉아 술 한잔하며 저녁 해를 바라보는 거라고 그의 처 장씨 부인이 말했다. 그래서 그의 아들 이름조차도 술 싣는 수레란 뜻의 맹가(孟軻).<곽말약郭沫若1892~1978>

 

예나 지금이나 필부의 로망은 장성한 아들과 함께 술 한잔 하는 거, 그게 전부다. 그러나 이규보의 꿈은 조금은 달랐다. 그는 당대 전대 후대에 이르러 최고의 시인 문장으로 시성(詩聖) 두보를 인정은 하지만 존경까지는 아니고 시선(詩仙) 이태백과는 극심한 경쟁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그의 아들중 하나를 시든 술이든 어느 쪽이든 이태백보다 더 크게 키운다는 작심으로 아명(兒名)도 이백보다 백이 더 많은 삼백(三百)으로 지었다.

 

문제는 이 삼백이란 녀석이 시를 쓰는 게 아니라 매일 술만 퍼마신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겨우 젖니가 난 네가 벌써 술을 마시다니<汝今乳齒已傾觴여금유치이경상>로 시작되는 아들 삼백이 술을 마시다<兒三百飮酒>라는 78구 고율시는 이규보의 눈물겨운 통한의 시다. 삼백이라 이름 지은 것이 후회되는구나 <命名三百吾方悔명명삼백오방회> 네가 날마다 삼백 잔씩 마셔댈까 두렵구나<恐爾日傾三百杯공이일경삼백배>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卷5>천하제일문장이던 이규보도 자식교육은 신통치 못했다. 도연명이 못난 자식 울화로 귀거래사를 불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