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과 나라 사이에 어느 쪽이 우선일까.
자유가 노나라 무성 땅의 읍재가 되자 스승인 공자께서 “자네는 한 지역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인재는 얻었는가?”하고 묻자 자유는 ‘담대멸명’을 얻었다며 우쭐하니 말을 잇는다.
‘담대멸명’은 지름길로 다니지 않으며 공무가 아니면 일찍이 저의 집에 이른 적도 없습니다.<자유위무성재(子游爲武城宰)자왈(子曰) 여득인언이호(女得人焉爾乎) 왈유담대멸명자(曰有澹臺滅明者) 행불유경(行不由徑) 비공사(非公事) 미상지어언지실야(未嘗至於偃之室也.論語雍也)13>쉽게 말해서 공과 사의 구분이 분명한 인재를 얻었다는 말이다.
하루는 이회(李禬)가 제주 목사에 제수되어 떠나기 전날 사숙 윤선도(尹善道)를 찾아와 전별어(餞別語)를 청한다. 이에 윤선도는 윗글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위정(爲政)관직의 높고 낮음이나 지역의 크고 작음을 논하지 말고(無論官之高卑地之大小) 반드시 인재 얻음을 우선으로 하라(必以人才爲先也). <孤山遺稿卷五送李濟州序>
이회는 1631년 인조 9년 별시문과 병과로 등과한 인물로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세자시강원사서로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청나라 심양 인질 때 동행한 인물이나 오랑캐 나라에 대한 분을 삯이지 못해 날마다 술로 심사를 달랬는데 그중 하나가 차라리 세사금삼척(世事琴三尺) 생애주일배(生涯酒一杯)라면 좋으련만 심양에서 채유후(蔡裕後)와 더불어 취중 통곡하며 읊었다는 유신(庾信)의 애강남부(哀江南賦)다.
이는 백성은 국가를 지키지 못했고, 국가는 백성을 살리지 못했음에 대한 취중통한임에 분명하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작금의 대한민국은 오랑캐 따위의 외세에 의한 호란은 아닐찌라도 통치자의 무능으로 인한 치란(治亂)의 혼돈 속에서 국민은 무장 해제된다.
그 중심에 선출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판결문이 남아있다. 국호 대한민국)國號 大韓民國)에서 민국(民國)이 갖는 의미는 백성과 나라라는 병렬적 결합이면서 위민(爲民)을 내함 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자구는 아마도 백성을 위하는 국가라는 말일게다. 이는 백성이 나라의 근본 민유방본(民惟邦本)이라는 말이다. 이런 멋들어진 국호를 가진 나라에서 탄핵이라는 정치를 판결이라는 사법으로 푼다는 발상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지만 헌법재판소의 최종판결이 정치적이 될지 사법적이 될지 이도저도 아니면 꼼수가 될지…. 헌법재판관들에게 솔로몬의 지혜가 요구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