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불이위의(亦不以爲意)
“불역이위의(亦不以爲意)-대수롭지 않을 일로 여기다.”라는 말인데, 광해 15년 계해(癸亥) 3월 10일 임인(壬寅)일에 왕 광해께서 어수당(魚水堂)에서 궁녀들과 술판을 벌이며 노느라 정신이 팔려 상황 파악을 못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틀 뒤 광해군 일기 15년 계해(癸亥) 3월12일 밤, 12시 반정으로 광해는 폐위된다.
파면 대통령 박근혜를 보면서 광해군이 읽혔기에 영인본 조선왕조실록 33권 째 광해군 일기를 꺼내 광해군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한 번 읽어 보던 중 위 문장이 눈에 띤 것이다. 다는 아니지만 몇 몇 사람에게는 사람의 모자람이 주는 아픔이라는 게 있다.
특히 거기에 속한 사람이 국민을 이끄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그 아픔의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 국민은 늘 그놈의 사람의 모자람이 주는 아픔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시달려야 했다. 공자는 논어 헌문 편에서 방유도(邦有道) 위언위행(危言危行) 방무도(邦無道) 위행언손(危行言孫)이라 했다. 이게 뭔 소린가 하면 정치가 올바로 되고 있다면 소신껏 말하고 소신껏 행동해도 되지만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는 소신껏 행동은 하되 말은 삼가란 말이다.
좌구명은 자신의 책 춘추좌씨전에서 여러 약소국가들의 명멸을 자세하게 기록을 한다. 좌전에서 말하는 약소국의 가장 큰 문제는 두 개로 압축 된다. 북방의 오랑캐와 주변의 강대국이다. 많은 약소국들은 오랑캐에 나라를 잃을까 걱정해야 했고, 오랑캐를 간신히 달래놓으면 이젠 강대국이 으르렁 댄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제나라 제 환공에게는 명재상 관중이 있었다. 그는 위로는 제 환공을 보필 했으며,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밥 배불리 먹고 등 따습게 했으며 군사적으로는 강군을 만들어 북방 오랑캐와 주변의 강대국들로부터 제나라와 제나라 백성의 안녕을 지켰다.
공자는 이런 관중을 일언지하에 인자(仁者)라 했다. 논어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공자는 그 누구에게도 조건 없이 일언지하에 인자라고 칭한 유래가 없다. 심지어 안회가 죽자 하늘이 날 버렸다며 통곡을 할 만큼 사랑했던 안회에게 조차도 그리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북방의 오랑캐와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나라를 지킨 공이 컸다는 말일 게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이 꼭 그렇다. 우리는 제나라 명재상 관중의 지혜를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