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신과 양명 사이에서 오명을 낳는 사람들.
삼과기문불입(三過其門不入)은 당서(唐書)에 나오는 말이다. 자기 집 대문 앞을 세 번 지나는 갔으나 집에 들어가지는 않았다는 우임금의 고사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그야말로 열심을 다해 공부를 해서 입신(立身)까지는 성공을 한다. 그런데 양명(揚名)에 이르러는 현달(顯達)치 못하고 오히려 이름과 가문에 먹칠하는 이른바 오명인(汚名人)으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권력을 거머쥔 사람들을 통해서 처음과 끝을 명징하게 보고 있다.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아서 깨끗이 사용하고 마침에 이르러 그 권력을 깨끗이 되돌려놓고 내려오는 사람보다는 권력의 올가미에 걸려 비참한 말로를 겪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순(舜)임금 시절 우의 아버지 곤(鲧)은 9년에 걸쳐 국가의 강과 하천을 관리했는데 해마다 홍수가 나서 나라와 백성들에게 그 피해가 막심하였다. 곤은 치수를 관리할 만큼의 열정은 있으나 역량면에서는 함량이 미달인 자였다. 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흐르는 물을 막아대는 흙막이 공사가 전부였다. 일정기간 고였던 물은 넘쳤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돌아갔다. 보다 못한 임금은 책임을 물어 그를 사형에 처한다.
아들 우(禹)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물 관리를 하게 된다. 아들은 아버지와는 달리 무조건 막아대는 폐쇄가 아닌 물꼬를 터주는 소통을 했던 것이다. 당서(唐書)는 이를 치수(治水)라 기록한다. 이때부터 물은 막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한다는 치수라는 말이 생겨났다. 치(治)를 다스림이 아닌 흐를 류(流)로 본 것이다.
주자는 치수(治水)에서 치국평천하의 이치를 담아낸다. 군주는 민심과 함께 흘러가야한다는 것이 주자를 관통하는 사고다. 여기에는 치자와 민심을 이어주는 즐풍목우(櫛風沐雨)의 신하가 있어야한다. 우임금을 일러 즐풍목우의 신하라 한다. 우는 벼슬하는 관료는 위로는 임금을 위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위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형장으로 사라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터득했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가 못 다한 치수를 위해 즐풍목우의 세월을 풍찬노숙으로 견디며 10년에 걸쳐 물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장딴지에는 살점이 아예 안 보이고 정강이에는 털이 한 올도 남지 않고 다 빠졌다. 또 바람으로 머리 빗고 비로 목욕 하면서 나라 안의 온갖 것들을 제 자리에 놓았다<腓無胈 脛無毛 沐甚雨 櫛疾風 置萬国>. 라고 장자(莊子)천하편(天下篇)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