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쓰다’는 타동사이다. 쓰는 누군가의 몸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사를 쓴 동아일보 기자들은 예측했을 것이다. 1945년 12월 27일. 남한은 충격에 빠졌다. ‘외상 회의에서 논의된 조선 독립 문제,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는 기사 때문이다. 동아일보 1면에 실린 기사는 취재한 내용이 아닌, 명백한 오보였지만 사실처럼 퍼져나갔다. 뒤늦게 오보임을 슬쩍 밝혔지만, 기사는 도그마로 확정된 이후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은 <한성순보>다. 1883년 박문국에서 발행했다. 열흘마다 인쇄된 <한성순보>는 주로 개화의 이유와 개화의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한 신문이었다. 대한제국 시기에 발행되는 신문들은 지면을 정리했다. 관보(官報), 외보(外報), 잡보(雜報), 논설, 광고 면으로 세분화 시켰다.
관보는 정부가 발표한 내용들을 발췌하여 새롭게 정리한 것이었고, 외보는 외신 기사였다. 잡보는 기자가 직간접으로 취재한 것으로 오늘날의 보도기사라고 볼 수 있다. 통신 수단도 부족했고 지방 주재 기자도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잡보의 내용은 대개 이렇게 끝났다. ‘누구누구의 전언에 의하면……한다더라’
2019년, 대한민국의 언론사들은 최첨단의 방송 장비를 갖췄다. 최고의 엘리트 기자들이라고 자랑한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방송과 신문이 써대는 기사들과 시중(市中) 잡보와의 차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정론(正論) 지가 아닌 정론(政論)지 임을 의심해 볼 만한 글들도 자주 등장한다.
대한민국의 기자들이여!
기자들은 역사의 관찰자이며 참여자이다. 그러므로 불러주는 자료만을 보고 자판을 두드리지 말라. “닫힌 방 안에서는 생각조차 닫힌 것이 된다.”라는 E.H. 카아의 말을 추상(秋霜)처럼 생각해 보라. ‘추상같다’는 말은 엄정하다는 것이다. 법을 다뤘던 형조가 추관(秋官)이었던 것에서 유래한 말의 어원을 기억해 보라. 가을에 내리는 서리는 차갑지만, 뒤끝을 남기지 않는다. 가을 서리의 기상이 사라지고 ‘……한다더라’와 같은 기사는 ‘뒤끝 작렬’일 뿐이다.
글 쓰는 쟁이들이라 불리는 기자들이여!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이런 세상에서 시를 쓰길 바라고, 시인이 되길 원했던 걸 부끄러워하다.” 적국의 땅에서 스물여덟의 생을 마감했던 시인 윤동주. 그가 남긴 <참회록>을 읽어보라.
2019년 대한민국에서 ‘나는 고발한다. ○○○기자를…’이라는 청원들이 나오지 않도록 하라.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기자란 누구인가? 그것을 누가 정하는가? “나는 기자다”라고 당연시하기 전에, 무엇을 쓸 것인가? 이 수동태 표현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