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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달 구두ㅣ신영배

달 구두

                신영배

 

버려진 날에는 집을 지나 더 걸었다

 

발은 백지가 되었다

 

물을 건넜다

구름을 딛고 나무에 매달렸다

몰에 빠져 죽은 여자를 오래 들여다 보았다

 

새들을 따라 날았다

 

모래 언덕 위에 앉았다

백지를 읽었다

 

더 걸었다

 

뒤꿈치가 부풀었다

 

다 갈었다

 

물집을 키웠다

 

밤을 기다렸다

 

 

떠올랐다

 

신영배는 2001년 『포에지』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그녀의 시세계는 여성성의 섬세한 세계를 독자들에게 제시했었다. 여성적인 감각과 상상력은 잔잔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거느려 왔던 것이다. 그녀의 시에 나타나고 있는 키워드는 물, 그림자, 몸, 소녀, 달 등이다.

‘달 구두’는 달과 구두라는 의미다. 달은 여성성의 상징으로서 걷고 있거나 날아다니거나 앉아 있어가 들여다보는 시적화자를 비추는 역할로서의 달이다. 달은 어둠을 밝히는 신성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달빛 아래 드러난 물에 빠져 죽은 여자는 죽은 자의 모습이 아니라 잠든 자의 모습으로 읽힌다. 시적 화자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

구두는 여자를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역할로서의 구두다. ‘더 걸었다’는 문장은 뒤꿈치가 부풀었다는 문장을 이끌어낸다. 걷는 것이 운명인, 물집을 키우는 여자는 자학의 고통을 즐기는 여자다. 문학과지성사 간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