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해방되던 날 늦은 오후! 해가 막 질려는 동경 시내의 어느 언덕길을 어떤 한 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혼자 미친 사람처럼 무어라고 중얼거리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뒤 딸아 가던 김소운(金巢雲)선생은 궁금하여 가만히 다가가 엿들었다. 그 할아버지가 눈물 흘리며 중얼거린 소리는 “조선아! 조선아! 너 어디 갔다 이제 왔느냐! 조선아! 너 어디 갔다 이제 왔느냐!”였다.
이 얘기를 전해 준 김소운선생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본에 머물며 집필한 자신의 유명한 <목근통신(木槿通信)>에서 “내 어머니는 레프라(문둥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어머니를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습니다.”라고 조국에 대한 애타는 목마름을 절규하였다.
이름 모를 노인은 해방으로 조선을 되찾은 기쁨을 노래 한 것이요, 김소운 선생은 되찾은 조국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조국이 비록 헐벗고 굶주리고 반 토막이 난 채로의 더러운 문둥이 같은 조국이지만 자신에게는 “어느 극락정토(極樂淨土)보다도 더 그리운 어머니의 품”이라고 외치고 있다.
지금까지 이들이 조국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었을 때에 조국을 되찾는데 앞장섰던 백범(白凡)김구(金九)선생은 조국의 미래를 얘기하고 있었다.
백범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글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라고 자신의 소원을 밝힌다. 그러면서 그는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인다.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보다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 바로 그러한 문화의 힘으로 세계평화의 중심축이 되는 것을 소원하면서 백범은 쓰러졌다.
해방된 조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우남(雩南)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 이상은 또 어떠했는가? 그는 자신의 취임사에서 “어느 나라든지 우리에게 친선(親善)히 한 나라는 우리가 친선히 대우할 것이요, 친선치 않게 우리를 대우하는 나라는 우리도 친선히 대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울러 그는 “부패한 정신으로 신성한 국가를 이룩하지 못하나니~~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행동으로 구습(舊習)을 버리고 새 길을 찾아서~~날로 새로운 백성을 이룸으로써 새로운 국가를 만년 반석위에 세워 나가자”고 역설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오늘이 우연하지 않다는 사실이 필자의 머릿속을 섬광처럼 지나가면서 오늘이 있기까지의 숱한 한(恨)들이 한강물보다도 더 짙푸르게 흘러 이루어 진 내력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 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인용해 보았다.
필자는 여기서 이름 없는 백성들도 왜정 때에는 얼마나 독립을 갈구하면서 나라사랑에 목말라하였는가를, 그리고 지도자들 또한 얼마나 깊은 사상적 통찰력으로 장차 세워질 나라의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는가를 다시 한 번 되뇌이고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북한이 일으킨 6.25전란을 거치면서도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무역대국으로 발전했다. 비로소 백범이 꿈꾸었던 문화대국이나 우남이 바라던 새로운 나라가 어느 정도는 현실화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경제분야는 차제하고 문화 분야만 보더다로 한류에 힘입어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BTS’나 최근 ‘기생충’등 영화분야까지 대한민국은 문화강국으로 발돋음하고 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열강들의 끊임없는 각축전과 정치권의 이전투구다. 앞서 큰 정치지도자들이 보여준 미래세대 비전을 곤고히 계승발전 시키려면 현 정권과 정치지도자들부터 대오각성(大悟覺醒)의 자세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