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도서관의 영원한 밤
신해욱
내 자리에서. 더할 나위 없는 내 자리에서. 너는 죽은 책을 읽고 있다
커튼이 부풀고 있다. 사물이 펼쳐지고 있다. 죽은 까마귀. 죽은 불가사리. 죽은 가자미. 죽은 노래의 메들리가 들려오고 있다.
원을 그리면서. 반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면서. 나는 나의 동정을 살피고 있다.
두 개의 귀. 열 개의 손톱.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나쁜 버릇. 너는 죽은 농담의 뼈를 모으고 있다. 죽은 생각의 무덤을 파헤치고 있다. 죽은 단어를 모아둔 필통을 뒤적이고 있다. 죽은 가자미의 눈동자가 너를 노려보고 있다.
수분 과다로 죽은 선인장에 나는 규칙적으로 물을 주고 있다. 화장실을 참고 있다. 발소리를 죽이고 있다. 원을 그리면서. 점점 더 완전한 원을 그리면서. 죽은 속담을 외우고 있다. 죽은 시계. 죽은 가마우지. 죽은 불가사리.
딱딱한 것이 만져지고 있다.
나는 웃고 있다. 내 자리에서. 더할 나위 없는 내 자리에서.
신해욱은 1998년『세계일보』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그녀의 시는 정제된 언어와 견고한 형식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첫 시집 『생물성』은 인칭 없는 고백과 시제를 넘나드는 아이러니를 보였다. 그후 근원이라 할만한 것으로 나아가기 위한 안간힘의 시편들을 보였던 시인이다. 이번 그녀의 네 번째 시집 『무족영원』은 자신에 대한 탐구의 시집이다. 그녀는 다리 없이, 앞을 내다보는 눈도 없이 땅속으로 파고드는 무족의 영원 류가 되어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그녀는 시집마다 작은 혁명을 시도하고 있다. 예컨대‘시인의 말’을 시집의 앞과 뒤에 나누어 싣는 것이 그것이다. 뒷표지의 자술 표사도 상식을 깬다. 네 글자로 이루어진 고독의 무한한 목록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문장의 배치도 비상식적이다.
「국립도서관의 영원한 밤」은 위에서 말한 자신에 대한 탐구가 잘 드러난 시편이다. 그녀의 국립도서관은 죽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모든 지적 체계를 이루는 지식들은 활자화 되는 순간 죽은 지식들이다. 살아 숨 쉬는 현장의 지식들은 아직 관속에 들지 않은 것이다. 이 시는 도서관의 더할 나위 없는 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와 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를 관찰하는 그녀로 나뉜다. 분열된 자아가 둘인 것이다. 어느 자아가 주체인지 알 수 없다. 죽은 농담의 뼈를 모으고 죽은 생각의 무덤을 파헤치는 그녀를 보고 있는 그녀가 있다.‘죽은 선인장에게 규칙적으로 물을 주는 그녀가 있고 더 완전한 원을 그리면서 죽은 속담을 외우고 있’는 그녀가 있는 것이다. 분열된 자아를 끊임없이 관찰하는 또 다른 자아를 그녀는 슬프게 보고 있는 것이다. 문학과지성사 간행『무족영원』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