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장현
치과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맛있는 과자를 먹을 거야
저 멀리 빨간 머리의 연인들이 나누는 키스도 챙겨볼 거야
외국에선 느낌표나 물음표를 자주 써도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랬어
천둥이 우르르 쾅쾅 해서 허둥지둥하는 반려동물에겐 꼭 한국어로 쓴 시를 읽어줘야지
뒤에 숨어서 귀여워하지도 힘껏 안아주지도 않을 거야
휴대폰을 울리는 부고 소식처럼 반려동물의 장례식에 친구들을 초대하자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이젠 매일매일 생리하는 것 같다는 친구네 화장실도 한 번 두드리고 갈 거야
보기 좋은 책이 읽기에도 좋은 거야 나는 여름의 빌라에 오래 앉아 분수대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볼 거야
엄마 어디 갔어? 왜 혼자야? 묻지 않고 나를 잡아당기는 아이의 손을 따라 들어갈 거야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어도 괜찮을 거야
장현은 1994년 서울에서 태어나 2019년 제1회 박상륭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그의 첫 시집 『22:Chae Mi Hee』는 2017년부터 현재까지 시간순으로 씌어진 시편들을 모은 것이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사회에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각종 문제들이 가시화되었으며 한국 문학장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장현은 문학장의 경계에서 시 쓰기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인의 적나라한 토로와 제언을 엿볼 수 있다.
「여름 방학」은 사춘기를 막 지나고 있는 청소년의 심리적 묘사로 읽힌다. 시적 화자는 여학생으로 보아야 될 것이다. 그녀는 맛있는 과자를 먹고 싶고, 키스를 하고 있는 연인들을 훔쳐보고 싶고, 느낌표나 물음표를 자주 사용하고 싶고, 반려동물에게 한국어로 쓴 시를 읽어주고 싶고, 매일 생리를 하는 것 같다는 친구네 화장실도 가보고 싶고, 읽기 좋은 책을 읽으며 빌라에 앉아 분수대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고 싶고, 그녀를 잡아당기는 아이의 손을 따라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젖은 옷으로 몸매가 들어나는 것도 싫지 않은 나이다. <문학과지성사> 간 『22:Chae Mi Hee』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