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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퍼펙트 블루ㅣ백은선

퍼펙트 블루

                             백은선

 

검은 돌을 순에 쥐고 물 위를 걸었다

 

꽝꽝 얼어붙은 하늘은 높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

 

계속 걸었다 천천히 나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백은선은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들끓는 시어가 가득 찬 첫번째 시집 『가능세계』로 ‘가장 뛰어난 첫 창작집’에 수여하는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한 그녀는 두번째 시집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에서 범람하는 문장으로 슬픔과 불안을 펼쳐보였다. 세 번째가 되는 이번 시집 『도움받는 기분』에서 백은선은 사라진 기억의 지도를 만들듯이 무너진 마음을 계속 쌓고 다시 허물면서 겹겹이 아름다운 무늬를 보여준다. 그녀는 매일매일 벌어지는 작은 싸움들을 기록하는 것으로 시를 완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시와 자신을 계속 의심하면서 쉽게 타협하지 않고 오늘로부터 도망치지도 않는다.

백은선의 시는 잊히지 않는 기억과 오래 품어 물러진 감정을 흩뜨려 여러 겹으로 펼쳐놓는다. 의미가 함축된 무거운 시어가 아니라 끓어오르는 물거품이거나 흩날리는 눈발이거나 쏟아지는 빗소리처럼 가볍게 겹쳐지는 문장들이 그려내는 시의 풍경은 황량하고도 아름답다. 그녀의 어법은 선명한 목소리면서 동시에 강렬한 이미지다. 존재한 적 없고 이후로도 존재하기 어려운 시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퍼팩트 블루」는 이번 시집에서 유일하게 호흡이 짧은 시다. 같은 이름의 일본판 에니메니션 영화가 있다. 이 시 역시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놓여 있다. 첫연의 검은 돌은 현실이고 물 위를 걷는다는 건 가상이다. 물 위를 걸은 사람은 예수 밖에 없다. 그는 신의 아들이었으므로 그게 가능했다. 둘째 연의 꽝꽝한 하늘이라는 표현으로 본다면 겨울이고 하늘이 꽝꽝하다면 물도 꽝꽝할 것이다, 화자는 얼음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겨울 하늘의 높이를 가늠 할 수 없어서 계속 걷고 있다. 그러면서 화자는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무너져 내리는 것은 그의 몸이 아니라 마음일 것이다. 단지 얼어붙은 하늘의 높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문학과지성사'' 간 『도움받는 기분』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