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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과 ‘공안’은 가끔 공생도 한다(?)
그렇다면 윤석열과 이준석은 어떤 관계일까?

오룡(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가끔 헷갈리는 노래가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와 “사랑은 아무나 하나, 그 누가 쉽다고 했나.”

 

전자는 나이를, 후자는 사랑을 강조한 듯하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일 뿐이다. 그래서 한 번 더, ‘사랑은 모호한 것이라고. 사랑은 실체가 보이지 않기에 매혹스러운’이라고 쓴다. 모호하여서 실체가 없지만, 현실은 매혹(魅惑)과 미혹(迷惑)을 넘어 곤혹(困惑)으로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독재의 억압을 뚫고 나온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환호했다. 개인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던 평범한 사람들 앞에 민주주의 내파(內波)라는 ‘돌연변이’들이 숙주처럼 나타날 줄은 몰랐다. 앞선 20세기에 상반된 가치의 충돌이 길항(拮抗)된 역사였기에 21세기에는 이미 박물관으로 들어간 줄 알았다. 착각이었는지, 환상이었는지, 아무튼 자유와 민주라는 체제에서 나타난 윤석열과 이준석의 동맹은 모호(模糊)하다.

 

1922년 10월 무솔리니는 로마로 진군했다. 소총으로 무장했지만 2만여 명에 불과한 파시스트들을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진압하지 않았다. 무솔리니의 숭배자였던 측근의 감언이설 때문이었다. 국왕은 오히려 무솔리니가 이탈리아를 구원할 인물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수상으로 임명했다. 무솔리니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검증할 겨를도 없이 정권을 맡겼다.

 

이는 그릇된 신념과 신비주의가 합리적 이성을 몰아냈다는 방증이다. 결국 무솔리니는 자신의 힘을 기반으로 정권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모호한 신비주의 덕에 권력을 차지했다.

 

변절한 언론인이며 타락한 사회주의자였던 무솔리니는 대중의 심리를 이용하는데 탁월했다. ‘기차는 정시에 도착한다’라는 ‘프로파간다’는 길든 언론들이 받아쓰고 홍보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무질서와 자유를 응징하며, 파시즘의 능력을 확인시켜 준 이 말은 널리 퍼진 이유다.

 

무솔리니 집권 이전부터 ‘잘 달렸던 기차였다’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사실보다 중요한 것이 담론이기 때문이다. 정권을 장악한 통치자의 처지에서는 당연지사지만, 대중들은 나만 희생자가 아니라면 ‘괜찮아’라는 반응을 보여주니 파시즘 하기에 딱 좋았던 이탈리아였다.

 

옛말에 ‘깜냥’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가늠해 보아 해낼 만한 능력’을 깜냥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 말의 어원은 베틀로 짠 베의 밀도에서 나왔다. 또한 쓰이는 용도에 따라 나눈 천을 ‘감’이라 불렀다. 옷감이니, 장군감이니, 신랑감이니 하는 말도 여기에서 생겨났다. 그러니 윤석열 씨가 대통령을 할 만한 ‘깜냥’이 될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유권자가 선택할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든 물건이든 상품 가치를 높이는 것이 관건인 세상이다. 자신이 조직과 국가에 필요한 사람임을 강조하려면, 포커페이스와 전언 정치를 그만하라. 직접 나서서 검증을 받지 않는 지도자는 명명백백 민주주의 체제와 공생하기 어렵다. 이곳은 1920년대의 이탈리아가 아니다. 인터넷으로 무장된 수천만의 유권자가 최첨단으로 소통하는 2021년의 대한민국이다.

 

시간은 빠를수록 좋다. 대한민국 유권자는 이제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