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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독자와 멀어진 것이 아니라 시인이 독자와 멀어져

주영헌(시인‧평론가)

 

[용인신문] ‘우리 동네 이웃사촌 시 낭독회(우이시)’의 시작은 우연에 가까웠다. 2019년 가을, 김승일 시인과 나는 양지의 한 물회 집에서 시 낭독회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다소 즉흥적인 발상이었지만, 서로의 마음속에 시 낭독회를 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식사 이후 원삼면에서 시인이 운영하는 동네 책방을 겸한 북카페 ‘생각을 담는 집’을 방문했고, 시 낭독회를 개최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합의에 이르렀다.

 

첫 낭독회는 서울 은평구 소재 ‘니은 서점’이었다. 우이시의 의미에 대해서 먼저 니은서점 마스터 북텐더인 노명우 교수님을 찾아가 설명해 드렸고, 흔쾌히 승낙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우이시 시 낭독회가 1월 30일 시작되었으며, 그해 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11월 말 용산 CGV까지 15회 내외의 시 낭독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우이시 낭독회를 하기 이전까지 낭독회에는 부정적이었다. ‘잘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뿐만 아니라 모객과 같은 현실적인 부담도 있었다. 시 낭독회는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소수의 시인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첫 낭독회를 시작할 때 우려가 컸는데, 단 한 명의 독자도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기우였다. 낭독회를 반복하면서 김승일 시인과의 호흡도 마치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변했고, 낭독회의 짜임새도 단단해졌다. 독자의 반응이 뜨거웠고, 멀리서 일부러 몇 번이나 참가하는 독자도 있었다.

 

보통의 시 낭독회는 특정 단체나 문학 전문 서점 등에서 시인을 섭외하여 개최한다. 이때 시인은 수동적인 위치다. 시 청탁에 응하듯, 낭독회 청탁에 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낭독회에 참가할 수 있는 시인·작가는 얼마나 될까. 소수일 수밖에 없다. 설 수 있는 무대도 한정적이다. 소수의 문학 전문 서점을 제외하면, 지방자치단체나 학교, 문학단체, 도서관이 전부다. 특히 기관에서 진행하는 행사는 문학을 목적으로 하는 행사이기보다 문화행사에 가깝기에, 시인보다 인지도가 높은 유명 작가를 섭외할 수밖에 없다.

 

우이시 낭독회가 중요한 낭독회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까닭은 기존 낭독회 틀을 깼기 때문이다. 기다리기보다 찾아갔다. 동네 책방에 낭독회를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동네 책방에서 시 낭독회를 개최하다 보니 동네 책방이 낭독회를 개최하기에 이상적인 장소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동네 책방은 그 책방만의 아우라가 있으며, 이것은 독자들을 자연스럽게 낭독회 행사에 집중하게 한다. 동네 책방은 낭독회를 개최하기 적당한 크기여서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다. 가장 중요한 장점은 동네 책방이 가지고 있는 인적 인프라다. 동네 책방과 책방을 찾는 독자분들은 높은 유대가 있어, 모객에 부담이 적다.

 

여러 긍정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시 낭독회를 꾸준히 개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작년 개최한 지역만 살펴보면 서울과 경기, 용인, 청주까지 다양한 지역이었다. 코로나로 잠정 연기했지만, 올해는 대구와 포항까지 다녀올 예정이다. 체력이나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여러 어려움에도 낭독회를 다니는 까닭은 독자와 직접 만날 수 있으며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여 시심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만남은 동백 ‘반달서림’에서 우이시 시 창작회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작년을 이어 올해에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시 낭독회가 꼭 도서관이나 책방 등 열린 공간에서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올 3월부터 나는 음성기반 채팅앱인 ‘클럽하우스’와 ‘카카오 음’에서 시를 낭독하고 있다. 벌써 60회를 넘었다. 시간은 평일 새벽 6시부터 6시 30분까지. 약 30분간, 이곳에서 2~30명 내외의 독자를 만나고 있다. 다양한 시공간에서 독자를 만나면서, 나는 아직 시가 우리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확인한다. 생각해보면, 시가 독자와 멀어진 것이 아니라 시인이 독자와 멀어진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