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챗죽에 갈겨
마츰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리빨 칼날진 그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꾸러야하나?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깜아 생각해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
이육사(1904-1944)는 경북 안동군 도산면 원천동 881번지에서 이가호와 허길의 둘째로 태어났다. 이활이 이육사로 이름이 바뀐 것은 1929년쯤으로 보인다 대구 감옥에서 출옥하면서 발표된 글에서 ‘대구 264’로 쓴 필명이 보이다가 이육사(李陸史)로 쓰고 있다. 264는 대구 감옥의 수인번호다. 그는 항일투쟁을 위해서 중국으로 건너갔다. 난징에서 의열단장 이원봉을 만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했다. 귀국 후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베이징으로 압송된 그는 베이징 주제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구금되었다가 1944년 1월 16일 순국했다. 그의 대표작은 「광야」다. 이 작품은 발표되지 못하다가 해방 후인 1945년 12월 17일자 <자유신문>에 「꽃」과 함께 발표되었다.
「절정」은 그의 항일운동의 여정과 맞물려 해석되는 작품이다. 화자가 북방으로 휩쓸려 온 것은 매운 계절의 챗죽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의 살벌한 풍경이다. 화자가 서 있는 공간은 하늘도 지쳐 끝난 고원이다. 고원의 서리빨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무릎조차 꿇을 곳이 없는 언 땅에는 발 디딜 곳이 없다. 이 혹독한 계절의 화자에게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였을 것이다. '푸른역사' 간 『이육사 평전』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