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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이헌서재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에게 주는 위로

 

 

[용인신문] 요즘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뜻하는 이 말은 이중적인 평가의 잣대를 비틀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최은영의 『밝은 밤』은 전혀 반대의 이야기다.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현재의 나를 돌보지 못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나’를 돌아보게 한다.

증조모는 차별과 의무 때문에 위안부로 끌려갈 위기에 있었다. 그런 증조모를 구한 증조부. 그러나 증조부의 정의감은 위선이었다. 자식을 키워내느라 증조모 삼천이 밷어내지 못한 슬픔은 영옥을 지나 미선에게, 그리고 현대를 사는 지연으로 이어진다. 삼천은 딸인 영옥을 위해 견뎌야 했고, 영옥은 또 그 딸을 위해 견딤의 시간을 보내야 했으며, 엄마 미선 역시 자책감으로 딸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당당하지 못하다. 그런 슬픔들이 유전되어 지연의 삶 역시 운명적으로 얽혀 있다. 이들은 딸들을 키워내기 위해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엄격해야 했다. 고개를 들고 싶었지만 정작 고개를 낮추고 숨죽여 살아야 했던 슬픔.

삼천의 가족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새비 아주머니네 가족의 등장으로 지연 일가의 슬픔은 더욱 굴곡져 보인다. 새비 아주머니는 “사람의 노력을 알아보고 애쓴 마음을 도닥여주는 사람, 겨울에 빨래를 하고 있으면 손이 시리지는 않은지 물어보고, 장을 봐오면 다녀오는 길이 힘들지는 않았는지 물어보는 사람”(257쪽)으로 기억된다. 새비 아주머니의 작은 친절함에 위로받는 할머니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전이될 수 밖에 없다.

『밝은 밤』. 밤이 밝을 수 있는 건 역사 속에서 벌어진 위선적인 억압들을 감내했던 어머니들의 사랑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이 안내하는 것처럼 독자들도 우리 안에 당연하게 억압된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의 생애부터 사랑할 때 타인에게 넘쳐 흐를 수 있음을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