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룡의 역사타파 궁예를 위한 변명 - 그는 왜 폭군이 되었을까?
[고구려의 옛 도읍은 황폐해진지 비록 오래 되었으나 고적은 아직 남아 있다마땅히 백성들을 옮겨 그곳에서 살게 함으로써 국가의 변방을 공고히 하여 백세의 이익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김종서가 책임편수관이 되어 편찬된 고려왕조의 정사(正史)인 고려사에 나오는 태조 왕건의 고구려 계승관련 발언으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도 고려는 고구려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나라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구려 계승보다 신라로부터 선양(禪讓)을 받아 삼한일통의 정통성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고려의 왕건은 신라 경순왕의 항복을 받기 전에 이미 무력으로 정변을 일으켜 태봉의 궁예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왕이 되었다. 때문에 왕건을 비롯한 고려의 건국 세력들의 입장에서 궁예는 부정적인 인물로 남겨놓아야 할 인물이 되었다. 실제 왜곡된 기록이라 할지라도 궁예가 현재적 관점에서 도덕적이고 자비로운 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궁예에 관한 이야기는 고려전기의 삼국사기와 후기의 제왕운기는 물론 조선의 고려사서술에서도 포악무도의 극한을 보여주고 있다. 본래 궁예는 출생부터 불운한 사람이었다. 삼국사기 궁예전에 헌안왕 혹은 경문왕의 아들이라고 되어
- 오룡(오룡아카데미 원장) 기자
- 2012-10-11 1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