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룡의 역사타파 ‘처용에 대한 오만가지 상상’
처용(處容)이 주는 친근함을 가진 세대들이 영어에 덜 노출됐다면 무슨 얼토당토 않는 말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언어와 비문학으로 국어를 나누어 시험보는 현행 입시제도에서 처용가를 배우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필자는 고등학생 시절에 유난스럽게 고전문학을 좋아했다. 마음껏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의 여백을 혼자 즐길 수 있었던 이유 때문이다. 처용가를 배우던 날, 자신의 아내와 몰래 잠자리를 하고 있는 외간 남자를 용서하는 내용에 대해 미친거 아닌가요라고 말했다가 선생님으로부터 삼국유사에 나오는 향가 14수를 다 외우라던 벌을 달게(?) 받기도 했으니. 그렇다면 한번 상상력을 발휘해서 처용이 살았던 9세기 말 신라로 가보자. 헌강왕이 동해안 개운포(지금의 울산 부근)에 놀러 갔다가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길을 잃었는데, 일관(점을 치는 관리)의 말인즉, 동해바다 용의 훼방이니 좋은 일로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근처에 절을 짓고 복을 빌라는 명령을 내리자 즉시 구름과 안개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동해 바다 용이 기뻐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와 놀다가 그 중 한명이 왕을 따라 경주에 와서 급간의 벼슬을 받았다. 왕이 미녀를 아내로 맞게 해주
- 오룡(오룡아카데이원장) 기자
- 2012-08-28 1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