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옛사람들은 수신에 이르기에 앞서 격물과 치지와 성의와 정심으로 내면을 다스려 놓은 후에 수신 공부에 이른다. 수신 공부라함은 제가와 치국과 평천하에 이르는 첫 학습 단계인 셈이다.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에는 주周나라를 중심으로 여러 제후국을 두어 나라를 통치했는데 제후국들의 작위는 공公‧후侯‧백伯‧자子‧남南 등 다섯 등급으로 나뉜다. 이렇게 나눠진 제후들이 다스리는 영토를 국國이라 하고 제후들은 위임받은 국을 또다시 나누어 대부들에게 관리하도록 하는데 이를 가家라 한다.
논어에서 노나라의 맹손가 ‧ 숙손가 ‧ 계손가 ‧ 삼가가 이를 말함이다. 그런데 이 가를 관리 즉 다스림에 있어서 자격이 있는데 곧 제가齊家를 이룬자에 국한된다는 점이다. 풀어쓴다면 위로는 부모님을 성심으로 모시며 조상에 대한 신종과 추원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그리고 좌우로는 형제, 배우자와 더불어 돈독한 우애에 흠은 있지 않은가. 아래로는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행여 소원하지는 않은가 등등이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윤리나 도덕적으로 의혹 내지는 결격 사유가 있다면 그런 자는 백성들을 다스리거나 관리할 위치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게 옛사람들의 생각이다. 옛말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도 샌다는 말도 있다. 이러한 말들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자리에 앉아서는 안되는 사람이 그런자리에 앉아서 에헴하는 까닭인 연고다.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은 신하들에게 말 몇마디면 충분히 다스려질 것 같으면야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백성이 그 말에 대하여 신信을 할수 없다는 데 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 초두 제배편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다른 벼슬은 구해도 가하지만 백성을 다스리는 위치의 벼슬은 구함이 가하지 않다. 그릇이 아니면 오르지 말란 말이다. 백성이 무슨 힘이 있어 높은 자리의 저들을 끌어내리랴마는 스스로가 자신의 깜냥을 알아 내려온다면야. 고래로 군주가 둔하면 가신과 측근과 가족과 주변인은 호강하는 법이다. 단 한사람만이 고통받는다. 그것은 백성 뿐이다. 이는 맹자의 가르침이 그렇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