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관중은 자신의 책 관자 목민 편에서 네 개의 줄에 관한 이야기 한 토막을 쓰고 있다. 하늘은 나라를 보살핌에 있어 그 나라 사방, 네 귀퉁이에 끈을 묶어 나라가 기울어지거나 엎어져 망하지 아니하게끔 끈의 균형을 유지토록 한다. 이를 전한 시기의 공자라 칭송받은 한나라 무제 때 춘추 박사를 지낸 동중서는 이 네 개의 줄을 일러 나라를 지탱하는 예의염치라 풀었다. 여기서 예라고 하는 줄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의 질서가 엉망일 것이고, 의라는 줄마저 끊어진다면 나라가 휘청할 것이고, 염이라는 줄마저 끊어진다면 나라가 기울 것이고, 더 나아가 치라는 줄마저 끊어진다면 그때는 나라가 망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멸滅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예의염치는 물과 같아서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고 했다.
백성들 사이에서 위에 있는 것은 오직 목민관이 전부라 했거늘 목민관이라 함은 분명 직위는 높은듯하나 하는 일에서는 백성들에게 봉직하는 공직자를 말함인데 이러한 목민관을 일러 모심청관이라 한다.
엄마의 마음으로 백성의 소리를 듣는 관리라는 말이다. 엄마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곧 목민관은 백성의 아픔을 들어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아기가 칭얼댄다고 해서 윽박이나 지르고 면박이나 주고, 그래도 안 되면 버르장머리 고치겠다며 몽둥이나 들이대면서 인상을 써댄다면 그게 어찌 엄마라 하겠는가. 악마와 뭐가 다르랴.
백성을 섬기고 모시는 것이 목민관의 할 일이고, 기본자세이다. 이렇게 하기가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심기가 불편하다 싶으면 그런 자는 목민관의 위치에 단 하루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목에 힘이나 주고 큰소리나 쳐대고 막무가내 짓 하라고 그 자리를 내준 것은 아닐 터. 오직 백성을 위해서만 봉사와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갔을 터라면 그리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거나 그럴 그릇이나 역량이 안된다면 스스로가 쥐도 새도 모르게 물러나면 될 일을. 굳이 그런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 권력 놀음이나 해 댄다면 하는 당사자는 신나겠지만 당하는 백성으로서는 죽을 맛일 것이다.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에 까지 이른다면 백성들 불쌍하여 어쩐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