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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시론]
“저들을 용서하지 마소서”

오룡(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오래전 : ‘돌팔이’의 사전적 의미는 ‘제대로 된 자격이나 실력이 없이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필자가 다닌 고등학교는 사립학교였다. 재단과 관련된 낙하산(?) 선생님들이 몇 분 있었는데 선배들은 그분들을 ‘돌팔이’라고 불렀다. 실력이 없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분들은 ‘교원자격증’은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돌팔이’가 유행했던 시절은 8 ‧15 해방 직후였다. 그중에서도 ‘돌팔이 의사’가 유독 많았다. 일제강점기의 의사 관리가 부실한 상황에서 만주국 의사, 미국 의사, 유럽 의사 출신들이 귀국했기 때문이다. 혼란한 시절이었기에 의사 면허증 위조도 흔하게 일어났다. 1948년에는 위조 면허로 의사 행세를 하던 사람이 서울시립병원 소아과 과장으로 있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지금은 가짜 의사가 사라졌지만 ‘돌팔이 정치인’은 곳곳에 남아있다. 사람들은 병원을 찾아갈 때 꼼꼼하게 알아본다. 용하다는 ‘명의’를 찾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러는 사람들이 정치인을 선택할 때는 ‘그놈이 그놈’이라고 말한다.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고 ‘구관이 명관’이라거나 ‘사람보다 정당’이라며 함부로 선택한다. 개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신중히 처리하는 마음처럼, 나라의 병을 고치려면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얼마 전1 : 성복천을 걷다가 외나무다리에서 정치인과 마주쳤다. 혹시 나에게 말을 걸어줄까 봐(혼자만의 생각)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뿔싸) 나는 그(그녀)를 알지만, 그는 나를 알지 못한다. 그는 천변을 걷고 있는 누구에게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아는체하지 않는다. 한참을 지켜봐도 그는 천천히 걸으려고 나온 듯 보였다.

 

정치하는 그가 천변을 걷고 있는 모습이 망중한(忙中閑)의 여유인지, 한가한(閑暇閑)의 시간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에게 주어진 공적 정치인의 기간만큼은 한(閑)을 접어두었음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가 싫다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유권자의 작은 바람, 결국은 ‘투표 때 보자’라며 다음 선거일을 기다린다.

 

얼마 전 2 : 며칠 전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느닷없이 물었다. “선생님!! 저녁은 드시고 오셨어요?”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금세 마음이 뭉클해졌다. 존재의 쓸모가 아니라 존재의 안부를 물어주는 어린 제자로 인해 행복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역사와 독서를 사랑하는 제자들임을 확인했다.

 

일반적인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가족이며, 정치인에게는 유권자일 것이다. 그런데도 가끔, 살다 보면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잊어버린다. 너무 익숙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직은 ‘오지 않은 미래’(헤어짐이든, 투표일이든)를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미래’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을 때 잘해야 한다. 떠난 뒤에 후회하지 말고.

 

오늘 : 품위는 강자에게 유리한 무기다. 사회적 약자에게 허용된 품위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예수는 예외이다.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쓴 누가복음 23장 34절의 말씀이다. 고통 속에 죽어가는 자리에서도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권력자들을 용서한 예수야말로 위대한 승리자요, 진정한 강자다.

 

하지만 나는 새롭게 쓰고 싶다. “저들을 용서하지 마소서. 저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라고. 나는 허용된 품위를 지키며 저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 저들이 두려워하는 방식으로 매듭되길 원한다. 저들이 한 일을 안 만큼(저들이 자신은 모른다고, 억울하다고 해도 상관없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한가한(閑暇閑)의 시간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저들의 교정(敎正)이 아니라 우리의 교정(矯正)이 필요한 시기는 4년에 한 번씩 온다. 변화는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망가진 세상을 수선해 나가는 일이 변화의 출발이다.

 

사족 : 배지의 뜻은 ‘충성을 표시하기 위해 옷에 부착하는 물건’이라는 의미로 16세기에 출현했다. 대한민국에서는 국회의원이 착용하는 도금 배지를 ‘금배지’라고 부른다. 특권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금배지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유권자에게 충성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선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