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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기 흔들며 ‘계몽령 외침’… 미국이 비웃는다

오룡(조광조 역사연구원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 중세 기독교를 뚫고 계몽주의와 자유주의가 넘쳐나던 유럽에서 마르크스주의와 파시즘이 등장했다. 자유주의와 계몽의 혜택을 받은 이들에게서 자유를 파괴하는 돌연변이들이 스멀스멀 출현한다.

 

이탈리아의 기차는 무솔리니가 권력을 잡은 후에야 정시에 도착했다. 파시즘의 우월성을 강조한 무솔리니가 만든 프로파간다는 적중했다. 계몽된(?) 이탈리아 국민은 무솔리니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 사실과 다른 담론은 절망을 향해 달리는 브레이크 없는 기차의 출발이었다. 이탈리아는 파멸했고, 무솔리니는 처참하게 죽었다.“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라고 하면, “틀렸어”. “원숭이 똥구멍은 까매, 까마면 사과, 사과는 맛없어가 정답이야”라고 외쳐댄다. 익명의 세계에 숨어있던 언어가 아스팔트 위로 올라오면서 우아한 위선조차 사라진 것이다. 필터링이 없는 외침일 수록 슈퍼챗은 늘어난다.

 

‘한국의 보수’가 아닌 ‘한국의 극우’이기를 자처한 몇몇 정치인들은 넘나들이 하면서 아스팔트 위를 걷는다. 이들이 가고자 하는 ‘극우의 길’이 ‘표의 길’임은 분명하겠지만 극우에 대해선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극우에 대한 학문적 정의에 완전한 합의는 없지만 개념적 정의는 명백하다.

 

이데올로기 측면으로 본다면 제국주의, 인종주의, 자민족중심주의, 반공주의, 반의회주의, 군사주의, 반동성애 등이 자주 언급된다. 파시즘 연구로 유명한 미국 조지아 대학의 카스 무데는 다양한 극우의 정의들에서 ‘반민주주의, 권위주의 국가관, 인종주의 등 몇 가지 공통분모’를 찾아냈고, 그중에서도 반민주주의가 가장 핵심이라고 했다.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차별, 배제, 반평등주의를 노골적으로 주장한다. 폭력적인 위협이나 행사를 통해 민주적 기본권을 제한 또는 폐지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표준적 규범’에서 벗어나는 소수자들을 배제, 추방, 혹은 절멸시키려고 한다. 이는 공동체의 민주적 참여와 목적을 추구하는 세력들을 약화시키거나 제거하려는 급진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내가 미워하는 정당과 시민단체를 없애기 위해 민주주의를 중지시킬 수도 있다(계엄 불가피 주장과 계몽령을 동일시). 내가 위험하다고 여기는 특정인과 공공기관을 무력화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헌법재판소와 법원 공격은 국민 저항권의 사용). 특정한 세력이나 적에 의해 점령될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해야 한다(부정선거론, 중공 배후론, 헌재 좌빨 공산주의자론).

 

이런 극우적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기에 등장했지만, 미약한 존재였다. 자신들도 극단적인 사고를 했다는 시선에 대해 부담감 때문에 조심했을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이 달라진 것은 2024년 12월 3일 계엄령 이후였다. 계엄에 실패한 윤석열은 조연에 불과했던 극우 인사들을 무대 위로 불러 주연으로 세웠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나온 광장의 사람들에게 역사 강사인 전한길 씨가 호소했다. “헌재가 윤석열을 파면하면, 파면에 찬성한 헌법 재판관은 제2의 을사오적”이라면서 “대통령의 계엄령은 계몽령이며 지금 윤 대통령은 억울하게 구치소에 갇혀 있다” 성조기를 들고 소리높여 “한국의 부정선거에 미국이 나서달라”고 외친다 한들, 한미 공조는 ‘이익과 손실 계산서’에 의해 움직일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가 백악관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똑똑하게 본 상황이라면 계몽되는 것도 바람직한 애국 보수의 자세일 것이다.

 

한국이 미국에 “우린 혈맹(血盟) 국가잖아”라고 말한다면 트럼프는 “너희로 인해 흘린 피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을 거야” 말하면서 “방위비 분담금이나 더 내라”라고 할 것이 뻔하지 않은가? *계몽 : 16~18세기에 유럽 전역에 일어난 혁신적 사상. 교회의 권위에 바탕을 둔 구시대의 정신적 권위와 사상적 특권과 제도에 반대하여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사유(思惟)를 제창하고, 이성의 계몽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진보와 개선을 꾀하려 한 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