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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한국을 대표하는 인정넘치는 아버지 같은 배우

People|중견배우 송재호
쌍커풀 수술로 배우돼 48년간 연기자 삶 살아
7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치르며 사격과 인연
남은 여생 코스타로 젊은영혼 구하는일 할 것

   
 
# 연기생활 48년, 대한민국 대표 아버지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버지 연기자라고 하면 누가 떠오를까. ‘부모님 전상서’의 중견배우 송재호를 떠올리는 건 기자만이 아닐 듯 하다.

우리가 무작정 그에 대해 친숙함을 느끼는 건 어쩌면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그를 너무 오랫동안 봐와서가 아닐까. 그의 연기 경력만 48년째에 접어든다니 그럴만도 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카메라를 손에서 떼지 않았다는 송재호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마음에 동아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고 보다 넓은 세상에서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에 자신이 자라온 부산을 등지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 충무로를 헤매던 중 우연히 먼저 연기생활을 시작한 동향 사람을 만나게 됐고 그의 소개로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킬 김기영 감독을 만나게 됐다.

충무로 고전다방에서 영화출연을 부탁하기 위해 대면한 자리에서 김 감독은 송재호에게 “뭐하러 왔어?” “영화하러 왔습니다” “내 영화 다 봤어? 공통점 못 찾았어?” “......” “내 영화에는 쌍커풀 없음 안돼”라며 거절했다.

이에 오기가 발동한 송재호가 얼굴을 바싹 들이대며 “째고 오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고 “그래 해봐라”라는 말에 그 자리에서 바로 서울시경 입구의 성형외과에서 쌍커풀 수술을 했다.

날카롭고 작은 눈이 대변신을 한 후 김 감독을 찾자 “그래, 내일부터 사무실로 나와”라며 그를 받아들여주었고 이후 박종호 감독과의 인연으로 본격적인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이때가 1964년 그의 나이 25세 때였다.

그의 첫 번째 데뷔작품은 소설을 영화화 한 ‘학사주점’이었다. 이후 그가 주연을 맡은 ‘영자의 전성시대’(1975)가 관람객수 800만을 넘기며 그야말로 대박을 쳤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지금 같으면 영화로 대박을 치고 890:1의 경쟁을 뚫고 KBS 특채로 입사했다면 광고 섭외가 엄청나게 밀려들어왔을텐데 우리때는 그런게 없어 사실 경제적으로는 큰 도움이 안됐지. 오히려 생활고에 시달렸다니까”라고 크게 웃는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송재호는 1980년부터 드라마에 출연해 드라마 ‘열풍’으로 연기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인 방송연기대상을 수상하게 됐다. 이후 ‘꼬방동네 사람들’, ‘무사’, ‘살인의 추억’, ‘그때 그사람’ 등 영화 스크린과 TV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150여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 내 스케줄은 왕PD가 모두 관리해
탤런트 송재호보다 더 친근한 호칭이 송재호 장로 아닐까? 믿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너무 기독교적인 ‘예수쟁이’일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의 믿음을 절대 숨기지 않는다.

타종교 신자였던 그가 아내의 인도로 기독교로 개종한 후 그야말로 인생을 대하는 모든 관점이 달라졌다.

하루에 3갑씩 피던 담배와 양손에 쥐고 마시던 독한 위스키와는 인연을 끊었고 모든 연기 스케줄도 주일을 지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짜여졌다. 일주일에 1~2차례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간증의 시간을 마련했고 그렇게 찾은 교회가 1600여 군데가 넘는다.

송 장로는 “나의 PD는 하늘에 계신 왕 PD”라며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만한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도 기막히게 나의 왕 PD께서 말씀을 전파할 수 있는 시간들을 마련해 주신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3년전부터 코스타(Korean Students All Nations 국제복음주의학생운동 : 해외 유학생을 위한 수련회)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송 장로는 “촬영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 잠시 쉬는 시간이 되면 어떻게 내가 쉬는 줄 알았는지 코스타 집회와 기간이 딱 맞아 떨어진다”며 “벤쿠버, 뉴질랜드, 일본, 미국 등 유럽권 국가만 빼고 거의 다 참석한 듯 해 올해 참석키로 한 토론토 이후에는 유럽에도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방송국에서 내가 교회 다닌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어. 내가 좀 멀리 살다보니 남들보다 일찍 출발해서 촬영장에 먼저 도착해 있는데 후배들이나 연출진들이 들어오면 ‘할렐루야’하고 인사하거든. 그럼 첫날에는 머쓱해서 손만 겨우 올리고, 두 번째 날에는 같이 ‘할렐루야’하고 세 번째 날에는 그쪽에서 먼저 나를 보고 ‘할렐루야’ 그래. 하하.”

연신 퍼지던 그의 웃음소리가 ‘자제분이 몇이시냐’는 질문에 갑자기 목이 멘다.
“지난 2000년 1월 6일 4남 1녀중 막내인 아들이 영동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어...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절실히 알게됐지.”

“결혼을 앞두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뜨고 나니까 아내가 못견딜줄 알았는데 내가 더 못견디겠더라고...그때부터 우리가족이 더욱 회계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됐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거둬가시면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값 없이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신 주님을 전하는 것이라고 깨달았지. 당시 다른일을 하던 큰 아들이 막내의 죽음으로 신학공부를 시작해 현재는 전도사가 됐어.” 슬픔이 가시지 않은 그의 목소리에 절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최근 연예인들을 비롯해 젊은이들의 자살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목숨을 끊는 건 지금 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책임이 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맡겨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인도해야 하는데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방법을 안 가르쳐주니 본인이 혼자 고민하다 결국 죽음을 택하는 것 아니겠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송 장로는 “앞으로 나에게 남은 생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내 연령이 다할 때까지 코스타 일원으로서 젊은 영혼을 위해 주 복음 전하는 일을 할 계획”이라며 “선교활동에 임무를 주신다면 죽을때까지 충성하겠다”고 다짐한다.

# 사격심판으로, 영화제작자로 ‘1인 다역’
연기자 송재호, 오륜교회 송재호 장로, 코스타 강사 송재호. 과연 송재호가 가지고 있는 타이틀은 이것 뿐일까.
송재호 장로가 사격종목에 국제심판자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송 장로는 “1978년 우리나라에서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치르게 됐는데 당시 호형호제 하며 지내던 박종규씨가 대한사격연맹회장이어서 도울것이 없나 고심하다 대회의 모든 기록을 7시간 반짜리 8m 영상으로 남겨서 선물했다”며 “촬영을 위해 태능선수촌을 드나들다 클레이 사격의 매력에 빠져 사격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 올림픽 피날레 경기에서 심판을 보기도 했던 송 장로는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대한사격연맹 부회장 직과 대한수렵관리협회 회장직만 유지하고 있다”며 “이젠 너무 늙어서 사격도 잘 하지 못해”라고 옅은 미소를 보인다.

송 장로의 못다이룬 꿈이 하나 있다면 ‘영화 제작자’로서의 송재호일 것이다. 송 장로는 2000년에 NM(New Millenium· 하나님이 재림하셔서 다스리는 새로운 천년) 필름이라는 영화사를 세우고 월남전 당시 한국인에 의해 태어난 혼혈아들이 무책임하게 버려진 것에 대한 소재로 영화를 제작하려 했다.

“모든 스케줄을 다 잡고 뉴욕에서 올로케이션 하기로 했는데 9·11 테러가 일어나 영화제작이 무산됐지. 지금은 시대적 배경이 안맞고… 혹시 다음에 빈 라덴을 만나면 꼭 손해배상 청구할꺼야. 하하”

“우리가 하는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역사속에 이뤄지게 돼있어. 용인같이 살기 좋은 곳으로 온것도 하나님의 뜻인데 사람들이 너무 멀다고, 차가 막히다고 불평만 해, 멀다 힘들다 생각하지 말고 좀더 반경이 넓어졌다고 생각하고 부지런해지면 되는데 말이야.”

따스한 손으로 악수를 청하며 돌아서는 배우 송재호와의 만남은 오랜 가뭄에 갈증을 해소해주는 단비와 같은 풍성함과 활력을 남겼다.

사진/김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