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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글 쓰기와 봉사는 앞으로도 내가 할 일…”

삶의 뿌리를 찾아서 | 수필가 박청자

   
 
며칠동안 서울 엄마에게 다녀온 경하, 정하 쌍둥이가 몸이 군데군데 모기 물린 자국 때문에 가려워서 긁고 야단이다.
보고 있자니 내가 대신 가렵고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타까웠다. 자장가를 좋아하는 두 놈들을 눕혀놓고 잘자라, 귀여운 경하, 정하야, 하면서 자장가를 부르는데 한 놈이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할머니, 할머니 침 더럽지만 좀 발라봐, 그런데 엄마한테는 비밀이야”한다.
나는 웃으면서 그래, 그래라 하고 혀로 상처를 핥아주고, 침을 바르고,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낳거라, 낳거라 하고 자장가를 불러주자 녀석들이 비로서 스르르 잠이 든다.
-아버님 우리 아버님 중 ‘할머니 모기 물린데 침 좀 발라봐’에서-

# 일상이 모두 글의 소재가 된다

원자력을 이해하는 여성모임 용인지부장, 전국주부교실 경기도지부 회장, 경기도 소비자정책심의위원회 심의위원,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 성균관 여성유도회 전국 부회장, 경기도 경제단체연합회 이사, 한국 수필문학회 이사 등등.

지난 4월에 경기한국수필가협회장에 취임한 박청자씨의 약력이다.

1941년 용인 백암에서 출생했으니 67세이다. 결코 젊지 않은 나이에 너무 많은 일을 하는게 아닐까 우려하는 기자에게 그녀는 “감투가 좋아 하지도 못할 일을 떠맡은건 아니다보니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며 “경기한국수필가협회장은 나이 순서상 내가 맡아야 할 때가 되었고 임기도 2년뿐이 안돼 자격은 없지만 맡게됐다”고 웃어보인다.

용인에서 태어난 그녀는 23세 때 당시 마평리에 살던 송후석씨와 혼례를 치른 후 지끔까지 용인에서 살고 있는 그야말로 뼈 속까지 용인 사람이다.

“처음 시집을 와보니 공무원이신 시아버지와 공무원인 남편의 월급으로는 생활이 너무 빠듯했어요. 그래서 집에만 있기 답답하다며 어른들을 설득해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포곡면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죠. 이후 보건소에서 선임 지도원으로 일했는데, 주부교실 회장을 뽑아야 해 당시 대동병원 원장님 사모님께 부탁을 드렸죠. 그때 사모님이 ‘너가 차기 회장을 한다고 하면 내가 맡겠다’고 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성단체 활동을 하다보니 명함이 늘어났어요.”

지금까지 그녀가 지닌 명함과는 다소 생소한 작가가 된 배경을 묻자 “작가로 등단한건 2000년이지만 그전에도 글쓰기를 좋아해 메모도 많이 남기고 전단지며 신문 끄트러미에 끄적끄적 글귀도 남기고 했어요. 그러다 쌍둥이 손주들을 보면서 모든 일상이 다 글의 소재가 된다는 걸 느꼈죠. 사실 시아버님도 한시 작가셨고 남편도 수필작가이다 보니 어쩌면 제가 글을 쓴다는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몰라요.”

그녀의 가족은 모두가 작가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작고하신 시아버지에서부터 그녀의 남편, 그녀, 그리고 딸까지 모두 작가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우리 딸이 ‘내 인생의 스웨터를 뜨시는 주님’이란 첫 수필집을 출판했어요. 그애 말이 ‘엄마가 우리 어릴 적에 직장생활하면서도 스웨터며 장갑, 목도리를 떠 입히지 않았느냐’며 ‘혼자서 집에 들어와 엄마를 기다리며 느꼈던 감정들이 작가가 되는 배경이 됐다’고 말하더라구요. 당시에는 가슴 아프고 애달팠던 기억들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을 성숙시키는 거름이 된거죠.”

박청자 회장은 “수필은 마음으로 쓰는 글이에요. 거짓이나 진실되지 못한 글은 절대 감동을 줄 수 없죠. 손으로만 쓴 글이 아닌 마음이 담긴 진솔한 글이 수필이에요”라며 “글을 쓰는 동안 잡념이 사라질 뿐 아니라 나의 모든 일상을 남길 수 있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된다”고 말했다.

“자격이 안되는 사람이지만 경기한국수필가협회장을 맡게 됐으니 임기동안은 최선을 다해야 겠죠. 수필은 수필가는 물론 시인, 시조시인, 소설가, 아동문학가 등 모든 장르의 문인들이 참여하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어요. 이 특성을 살려 경기수필이 한국수필문학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활을 자꾸 쏴야 과녁을 맞춘다

수필가 박청자란 이름으로 세상에 처음 출판된 책은 ‘아버님 우리 아버님’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그녀에게 시아버지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듯 하다.

“저희 시아버지는 매우 강직하시고 청렴하신 분이셨어요. 양지향교 장위를 지내셨고 한시를 쓰시다 보니 매우 조용한 성품의 선비셨죠. 시아버님이 글을 쓰시는 모습을 보다가 저도 한시 쓰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말씀 드렸어요. 그때 아버님이 ‘우선 글쓰는 법부터 배우라’시며 붓 글씨나 열심히 쓰라고 하셨죠. 그때부터 서예를 시작했고 지금도 하고 있어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시아버님이 생존해 계신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만큼 아직도 그녀의 말속에 시아버지는 생생하고 사랑이 넘친다.

“아버님께서 활을 자꾸 쏴야만 과녁을 맞추 듯이 글도 계속 써야만 발전이 있다시면서 독려해 주셨어요. 어느날 저의 서예 스승이 지어준 호가 마음에 안드신다며 ‘연운’이란 호를 지어주셨죠. 갈‘연’자 구름‘운’인데 먹을 갈고 학문을 닦는다는 뜻이에요. 아버님께서 구름을 갈 듯 먹을 갈면 좋은 기운과 음양이 있어 상서로운 뜻이 있다 하셨죠. 그리고 서두인도 지어주셨어요. ‘금심수진’ 즉 비단같은 마음으로 수를 놓듯 글씨를 쓰라는 뜻이었죠. 지금도 주변에서 이렇게 좋은 호와 서두인을 누가 지어주었느냐고 부러워해요.”

현재 박 회장이 세상에 내놓은 책은 총 6권이다. 수필집 ‘아버님 우리 아버님’‘차호에 담은 정’‘그래도 길들여진 남편이 좋아’‘할머니 사랑’과 시집 ‘초저녁 이슬이 옷깃을 적시네’‘시화호 갈대습지’가 그것.

“6월경에 일곱 번째 수필집이 나올 예정이에요. 아직 제목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화상입은 노송’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낙산사에 갔다가 불에 탄 솔방울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처음 시작은 담뱃불이었지만 솔방울이 타면서 총알처럼 날라가 큰불이 됐다고 하더라구요. 작은 솔방울 하나가 그 아름다운 자연과 소중한 문화재를 다 태워버린 셈이죠.”

그녀는 사물 하나하나를 예사로이 보지 않는다.

“제가 손주만 일곱이에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육아일기 쓰듯 글을 쓴 게 ‘할머니 사랑’으로 공감을 많이 얻은 듯 해요. 전에 며느리가 저와 우리 남편의 글에 대해 비평을 했는데 아버님 글은 박식해서 배울점이 많고 어머니 글은 물흐르듯해 편안함을 준다고 하더라구요. 전 죽을때까지 그런 편안함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제가 7년전에 위암에 걸린적이 있는데 그때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글을 썼어요. 제 자신이 병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용기를 주더라구요. 제 글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글로 읽혀졌으면 좋겠어요.”

# 마지막까지 글쓰며 봉사하는 삶 살 것

그녀가 지닌 명함중에 작가 외에 용인시여성유도회장이라는 직함이 있다. 그녀는 양지향교의 장지였던 아버지와 용인향교의 장지였던 시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성균관에서 예·지사범이 됐다. 그녀가 용인에서 처음으로 ‘당하집례’를 치른 여성이다.

그녀는 지금도 기업이나 대학 등에 관·혼·상·제·다례를 가르치기 위해 강단에 선다. 특히 예절교육을 위해서는 자주 출강을 나가고 있다. 그곳에서 받는 강사비를 그녀는 모조리 남을 돕는데 쓰고 있다.

“남편이 잠이 들고나면 모아놓았던 버려진 현수막 천을 잘라 시장바구니를 만들어요. 그 안에 제가 받은 강사비와 원고료로 산 사탕을 사서 소록도나 고아원, 양로원, 요양시설 등에 보내죠. 작은 것이지만 감사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행복함을 느낍니다. 만약 어디선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저 혼자 힘으로 충당할 수 없을 때 전직여성단체장모임에 동의를 얻어 회비로 쌀이나 필요한 물건을 사서 보내주죠. 전 아직 제가 제 힘으로 돈을 모아 봉사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감사를 하고 살아요.”

그녀의 봉사는 그녀의 수필들 만큼이나 일상적이어서 평범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이 병으로 투병하면서 받은 문병보조금 85만원에 15만원을 보태 필요한 사람에게 써달라고 기부했을 때 세상은 그녀에게 집중했다.

“사실 건강하면 할수 있는게 봉사 아닌가요. 죽으면 못하는 것인데 할 수 있다는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겠죠. 제가 보건소에서 일 할때 출장을 나가게 됐는데 물건을 빠뜨렸지 뭐에요. 그때는 핸드폰도 없고 급한 마음에 가정집 몇군데를 들어가 전화좀 빌려달라고 했지만 아무도 빌려주지 않더라구요. 그때 결심했어요. 난 작은 것부터 봉사하자.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소용이 없다. 남을 배려하면서 살자라구요.”

남을 위하는 헌신의 마음, 어머니로서 할머니로서 아내로서의 따뜻한 마음, 사물 하나에도 감동하는 순수한 마음을 지닌 수필가 박청자.

“살아있는 한 글쓰기와 봉사를 하고 싶다”는 그녀의 다음번 작품이 기다려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