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재)한택식물원 이택주 원장
-용인신문 5월 16일 보도-
-취재/김종경 발행인 iyongin@nate.com
-영상취재,제작/백승현 PD ytvnews@hanmail.net
“한택식물원은 우리 모두가 보호하고 가꾸어야 할 귀중한 자원이며, 앞으로 자라날 어린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할 생명문화유산입니다.”
이젠 강조하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자랑이자 자존심인 한택식물원. 1979년 설립 이후 2001년도엔 환경부가 ‘희귀·멸종위기식물 서식지외 보전기관’으로 지정했다.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비롯한 해외식물 유전자원을 보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식물원이다.
우리나라 자생식물 2400여종을 비롯한 총 1만 700여종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종합식물원. 동·서원을 합친 면적만 20만 평 규모다. 이중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는 동원 7만여 평에는 모두 36개의 테마 정원이 있다. 식물원에는 자생, 호주, 남아공, 고산, 허브, 약용식물 등 기호에 맞는 테마별 정원과 계절별 추천 정원이 있다. 또한 수생식물원도 인기를 끌고 있고, 내년 개장 예정인 남미온실 공사가 한창이다.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 비봉산 자락에 위치한 재단법인 한택식물원(원장 이택주·72세). 지난 11일과 13일, 기자가 방문했던 한택식물원은 토종 야생화를 비롯한 온갖 식물과 꽃들의 향연으로 활기가 넘쳐났다.
계절의 여왕 5월의 한택식물원. 지난 달 부터 앞 다퉈 피고 있는 야생화의 수수함과 소박함부터 화려한 이국의 꽃들까지 매일 만개하는 이곳은 국내 최대의 종합식물원이면서 식물 유전자원의 보고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국가나 기업도 엄두내지 못한 식물원을 한 개인이 일궜다고 한다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목장 부지에서 시작해 인류의 자산으로 변신한 한택식물원. 이같이 귀한 식물원이 용인 땅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용인시민들에게는 크나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재단법인 한택식물원 이택주 원장은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뒤 건설현장을 누비던 중 고향땅 용인에서 자생식물과 인연을 맺은 지 벌써 32년째다.
“세계적인 식물원이 되기 위해서는 면적보다는 얼마나 많은 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또 얼마나 과학적인 연구기능을 갖추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 원장의 식물원 경영철학이 녹아있는 한마디. 그동안의 인생역정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으랴. 선친이 하던 목장에서 축산업을 포기하고, 생뚱맞게 식물원을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고난의 길을 선택한 자신의 인생이 이따금 후회 막급하기도 했다지만, 그동안 일궈온 성과를 생각하면 가슴 벅찬 모습이다.
인생나이로 보면 칠십을 훌쩍 넘긴 노인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20여만 평에 이르는 식물원 구석구석을 발로 뛰며 손수 가꾸고 있는 아름다운 청춘임에 틀림없다.
인터뷰 첫째 날은 한택식물원의 자랑인 먹거리 중에 꽃 산채비빔밥을 먹으며 그의 식물원 농사철학을 들었다. 이틀 후엔 식물들을 옮겨 심는 인부들을 직접 지도하며 현장을 뛰고 있는 그를 만났다. 마치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듯 식생의 성질과 조화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며, 일일이 챙기는 그의 모습은 진지하다. 물론 아직도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식물원의 경영 현실을 들을 땐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한택식물원의 1년 관람객 수는 20여 만 명. 하지만 학생들을 비롯한 노인, 장애인, 용인시민 등에 대해 각종 할인혜택을 주고나면 적자다. 국내 최대의 유일한 식물원 임에도 1년 중 겨울철 넉 달은 직원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니 우리나라 식물원의 열악한 환경을 가늠할 수 있다.
이 원장은 “최소 유료관람객 30만 명이 넘어야 경영수지가 맞는다”고 말한다. 겨울철을 전후한 비수기도 원인이겠지만, 식물원에 대한 정부나 국민들의 무지한 인식도 원인 중의 하나.
그는 무엇보다 식물 연구와 경영에 더 신경을 써야하지만, 현실은 그를 현장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이 원장은 식물원 경영문제보다 우리나라의 모순투성이 정책을 더 걱정한다. 모든 산업의 기초가 되는 식물이 이젠 종자마저 외국에서 로얄티를 주고 사와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나 돼지고기를 비롯한 육류도 외국산 사료를 먹고 크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선진국에 종속 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기초과학분야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될 수밖에 없는 자연 식물학에 대한 개념 부재와 허술한 정책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가보면 음지 식물들이 양지의 화단에 심겨져 있는 등 기본 식생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유럽 등 선진국 국민들은 식물에 대해서만큼은 우리나라의 전문가 수준. 우리나라의 경우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잘 모르니 일반 국민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냐고.
“처음엔 초지였던 목장 터에 나무를 심었어요. 하지만 나무가 계속 죽어서 전문가들의 조언을 얻어 심었더니 더 잘 죽더라구요.”라며 그는 웃는다.
당시 그가 유럽 등을 방문해 조사해보니 모든 선진국엔 식물원이 있었다. 그래서 UN 가입국 전체를 확인해봤더니 유독 우리나라에만 식물원이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식물원 설립이었고, ‘오늘에 이르러 국내 최대의 종합식물원을 만들게 됐다.’
그러나 아직도 ‘식물원 설치에 대한 법률’이 없는 나라는 OECD가입 국가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아쉬워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 99% 이상이 식물원에 대한 개념조차 모른다며 안타까워한다.
“한택식물원 안에서도 유리 온실을 본 후에야 식물원이 저기 있다”라고 말한단다. 유리 온실을 봐야 식물원이라고 생각하는 현실. 이래저래 선각자는 외로운 모습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에 오늘도 몸으로 뛰고 있는 사람. 그를 처음 본 것은 1990년대 중반쯤이다. 그때의 기억에도 그는 외롭고 많이 지쳐보였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기에 오늘날 국내 유일의 식물 유전자원의 보고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리라.
기자 역시 마찬가지지만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나큰 부채감을 갖게 된다. 꼭 필요한 일임을 공감하면서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첫 번째요, 그의 열정 속에 숨어있는 애국심과 자연생명에 대한 무한한 경외와 애정의 모습이 두 번째 이유다.
이 원장이 말하는 식물원의 역할과 기능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식물원은 인간한테 가장 이용 가치가 있는 식물을 체계적으로 가꾸는 곳이다. 둘째, 귀중한 생명문화유산이니 공개해야 한다. 그래서 2003년부터 일반인 공개를 시작했다. 셋째, 식물 연구를 하는 곳. 이미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50여 종의 국제특허감이 준비되어 있다. 넷째, 자연생태에 대한 교육의 장이다. 학생 1000명을 교육하면, 그중 1~2명 정도는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마지막 다섯째는 식물원을 찾는 국민들의 마음이 편해진다.
결국 식물원이야말로 인류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국가나 기업이 운영하는 게 맞다는 그의 철학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마저 현실적으로 힘들다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화려한 식물원 정상에서 인사를 나누고 돌아선 기자는 이번에도 역시 또 다른 부채감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문의: 한택식물원031-333-3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