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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독자투고/어느 기관사의 소회 ‘100만키로 무사고 달성’

오해제 코레일 정년퇴임 기관사

   
▲ 오해제
코레일 정년퇴임 기관사
“잘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오십분...” 종종 흥얼거렸던 추억가요 ‘대전블루스’의 한 소절이다. 기차는 정해진 시간이 되면 매몰차게 정거장을 박차고 떠나가기 마련이다.

이별하는 연인들의 애절함도 아랑곳 않고, 점점 작아지는 뒷모습만 남기고 훌쩍 가버리기 일쑤다. 이런 녀석과 평생을 함께한 탓인지 헤어짐이 늘 낮설지 않았었는데, 막상 정년퇴임식 현수막 앞에 서려니까 가슴이 아려오고 허전한 속내를 감추기가 버거워 실없이 겨울하늘만 쳐다보곤 한다. 평소 체감치 못했지만 이리도 철길을 사랑했었구나 하는 생각에 코끝마저 찡해진다. 퇴임기관사의 휑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주하게 던져버린 지난 시간들이 한꺼번에 손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는 것만 같다.

1994년 개통한 분당선 전철은 내게 일터 이상의 귀한 둥지였다. 첫 발을 들여 놓았을 때는 선배들의 다그침에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질책이 애정인 것을 알게 되었고, 호된 가르침은 관심을 넘어 사랑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반듯한 기관사로 자리매김 하면서 시민들의 사랑도 느끼게 되었다. 2004년 11월 24일 용인의 철길 관문인 보정역을 개통한 날 보정역에서 출발하는 첫 열차를 승무하게 되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와 고맙다며 주시는 자판기 커피는 아직도 향이 그윽하다.

또 2001년 9월부터 분당선은 차장 없이 기관사 혼자서 근무하는데 수십 건에 달하는 유실을 주인에게 돌려줘 많은 고마움을 받은 것도 잊지 못할 일이다.

아무 탈 없이 멋지게 100만키로 운행을 달성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노력의 산물이다. 특히, 정차역이 많아 일반열차에 비해 평균속도가 낮은 전동차로 무사고 100만키로를 달성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기관사로서 제일 큰 영예일 수밖에 없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불과 몇 일전 그 기록을 달성하면서 많은 후배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기쁨에 앞서 그동안 함께한 동료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어린아이처럼 왈칵 울어버릴 뻔했다. 머지않아 이 기록과 함께 기흥역 개통과 동시에 철길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한 것이다. 하여간 항상 함께 달려온 기관차에게 고맙고, 힘들 때 손 내밀어 준 후배들에게 고맙고, 늙은 기관사에게 그간 수고했다고 함께 박수치는 듯 한 철길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최근 입사한 신입기관사들은 어찌나 당당한지 보기만 하여도 기운이 절로 난다. 이토록 정든 철도를 기쁘게 떠날 수 있는 것 역시 믿음직한 후배기관사가 있기 때문일 게다. 분당선 철도가 2003년에는 수서에서 선릉까지 연장되고 2011년 기흥개통, 2012년 왕십리개통 및 수원 방죽역 개통을 통해 2014년에는 수원역까지 연결되면서 끝없는 연장을 해왔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난 우리철도가 대륙으로 뻗어 나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러시아를 지나 유럽까지 떨치고 나갈 용맹함을 상상하며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지어본다. 지금까지 내가 나일 수 있도록 가장 든든하게 지켜준 ‘철도’. 때가되어 몸은 가지만 두 줄기 철길은 오롯이 내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한 것보다 더욱 나를 애틋하게 감싸준 ‘둥지’. 나이든 기관사의 지독한 분당선 철도사랑 아니 둥지사랑은 내내 계속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