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사람의 인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인생의 마지막 문턱이다. 또한 가장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사기 항우본기>왈 오강정장이 배를 대고 기다리며 항우에게 말 한다. "강동은 비록 땅이 작으나 지방이 천리이고 사람이 수십만 명. 왕이 되기에는 충분하니. 대왕께서는 빨리 건너십시오. 지금 신만이 배를 가지고 있으니, 유방의 군사가 도착하더라도 건널 배가 없을 것입니다." 항우는 웃으며 말한다.
"하늘이 나를 망쳤는데, 내가 어찌 건너겠는가. 강동자제 팔천 명이 강을 건넌 이후 한 명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 설령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아준다고 해도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보겠는가." 즉 하늘이 망하게 하였는데, 고향땅으로 피한들 뭘 어쩌자고 패군지장은 유구무언이라 했거늘. 결국 서초패왕은「면목」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한때 불가일세의 패왕이었고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초패왕이었지만, 지금의 이런 꼬락서니와 몰골로 고향에 돌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촌놈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이른바 패자의 쩌는 오만함. 고향으로 돌아간다 해도 고향의 부로향친들을 대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정천입지(頂天立地)의 대장부가 고가과인(孤家寡人)의 처지로는 죽어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고향은 금의환향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이로 보자면 항우는 유방의 아들 뻘이다. 하나는 피 끓는 청춘이고 하나는 강호의 세파에 닳고 닳은 노련한 고수다. 승과 패는 이미 결정되었다. 공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늙은 생강이 맵다고.
죽음은 산자의 눈을 뜨게 한다. 남자는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항우는 살아서 후일을 기약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죽음은 후학들에게 충격과 동시에 도전을 요구한다.
남자에게 있어서 사생관(死生觀)은 인생 성공과 실패의 분수령이 된다. 남자의 인생에는 스펙보다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박근혜는 스펙보다 스토리가 많은 여인이다.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세상은 그런 그녀를 일러 측천 무(則天武)박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