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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의 세설(細說)

능묵불혐필(能墨不嫌筆) 먹에 능한 자는 붓을 가리지 않는다.

<우농의 세설>

조선시대 임금 중종과 군신지예(君臣之禮)를 갖추지 않고 술을 마신 선비는 아호를 자암으로 쓰고 자를 대유(大柔)로 쓰는 자암(自庵) 김구(金絿1488~1534)가 유일했다.

왕희지 서체를 토대로 한 독특한 서체를 체계화 했는데 사숙으로 당초사대가(唐初四大家)의 서법을 모두 섭렵한다. 이들은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서체를 배운 자들로 구양순의 엄정함, 우세남의 온화함, 저수량의 곱디고움, 유공권의 자연스러움을 발췌한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서체를 그가 서울 인수방(仁壽坊)에 살았으므로 인수체(仁壽體)라고 한다.

조선 최고의 명필을 꼽으라면 자암을 비껴 갈순 없다. 물론 혹자는 조선4대 명필운운하며 조맹부 서체에 대가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진(晉)서체를 저본으로 해서 행서 초서의 대가 봉래 양사언(蓬萊 楊士彦). 왕희지와 안진경 서법을 모두 통달한 신필(神筆) 석봉(石峯) 한진(韓濩) 등과 같은 반열에 놓지만 이는 자암에 대한 무례다.

자암의 글씨는 훗날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이 유수체(流水體)로 승화됐고, 창암의 유수체는 후일 소암의 서체와 듕섭(이중섭)의 그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근자에 와서 자암의 글씨를 볼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엄밀하게 말하면 자암의 글씨라기보다는 자암 류의 글자 풍을 본다고 해야 바른 표현일 것이다.

영화제목 손 글씨가 그것이다. 달마나 육조혜능 그리고 머리위에 신발을 올렸던 조주가 썼던 서체가 갈필(葛筆)체인데 영화제목 타짜 같은 서체가 갈필체에 가깝다. 그것이 진짜로 칡뿌리로 쓴 글이라면 칡뿌리체로서는 빵점이다. 칡뿌리에서 오는 호방함이 죽었기 때문이다. 붓글씨에는 붓이 가는 길을 역입, 평출, 중봉, 삼절 등 이라한다. 명량은 죽은 글씨고 군도는 살았으나 숨 막히는 글씨다. 명량은 이삼만의 서체인「창암서적자여원규」에 그의 뿌리를 둔다.

군도는 석봉 한호의 서체인 천자문에 그 뿌리를 두는데 글쓴이가 조선 필법을 모르는 사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능하다면 영화는 서예의 대가가 쓰던가 아니면 당대 고수가 써야한다. 물론 글자 한 자당 가격은 대략 1억이면 된다. 전에 어떤 감독은 자당 1천 만 원씩 줬다는데 싼게 비지떡이라고 천만 원짜리 글씨가 오죽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