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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의 세설(細說)

문인의 붓글씨를 본다는 것은 일생을 두고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우농의세설

우농의세설

문인의 붓글씨를 본다는 것은
일생을 두고 영광이 아닐 수 없다. …1


붓글씨는 처음과 끝이 일목요연은 하되 결코 획일적이어서는 안 되고 각 자마다 획순에 변화가 있어야한다. 그리고 같은 글이 겹칠 때는 어떤 형태로든 앞 글자와 다른 맛을 느끼게 써야한다.

우암의 고제 호남팔현 권상하가 조선육창의 맏형 창흡이 적소에서 죽자 그의 아들이 묘비명을 다 써와서 우암에게 수결(싸인)만 해 달라하니 때는 우암이 정읍에서 사약을 받던 중 이다.

우암 왈, “선비가 죽었거늘 어찌 가벼이 쓸 수 있겠는가”라며 사약을 받던 것을 미루고 창흡의 묘비명을 써주었는데, 이것이 우암이 생전에 쓴 600여 편의 묘비명 중 백미로 꼽힌다. 이를 지켜보던 권상하가 우암의 손자 석주에게 했다는 말이라 전 한다.(이때 먹을 간 사람은 손자 석주라 한다.)

붓글씨는 크게 산 글과 죽은 글로 나눌 뿐 잘 쓰고 못쓰고를 논함은 군자가 할 짓이 못 된다. 권문세도가 종학(宗學)에서 나온 말이다. 그 권문세도가 문중 후학 중에 당대 1인자 서예가가 있는데 학교 문턱에도 안 가본 유학자 권우다. 권우는 일생에 한번 노년에 이르러 조선전통필법을 강의한적 있다. 그는 유학자답게 붓글씨도 률(律)로 쓴다. 률은 서당공부 방식의 하나인데 고전이 그러하듯이 서당공부는 청각성이다. 서당가거든 목이 터져라 외우고 오너라라는 말의 연원이다. 반면에 붓글씨는 시각 성으로 써서 청각 성으로 읽어 내야한다. 그렇기에 붓글씨를 본다 함은 그림처럼 머물러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처럼 지나감이다. 즉 붓글씨는 여운이다. 채근담은 이렇게 말한다. 바람이 대 숲으로 불어오지만/ 대 숲은 바람소리를 잡아두지 않으며/ 기러기가 연못 위를 날아가지만/ 연못은 기러기의 그림자를 붙잡아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상황이 오면 마음이 나타나고/ 상황이 지나가면 마음도 따라서 지나간다.(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雁渡寒潭 雁過而潭不留影 是以君子 事來而心始現 事去而心隨空)

지난8월에 강원도 인제군 만해마을 만해축전에서 시왕(詩王) 고은의 붓글씨 친필을 봤다. 여운이 긴 서체다. 학년으로 치면 중학교 일학년 쯤 정도의 글씨다. 15년 전 쯤 죽편의 글씨를 본적 있다. 천지분간 못하는 깨 벗은 아이가 장두 칼 차고 쓴 글이랄까. 이를 본 대여(고 김춘수시인 아호)가 말한다. 시만 극약 인 줄 알았더니 글씨도 극약이군. 사족으로 그날 광동 고 교정엔 비가 왔다.

<다음호에 계속>

송우영(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