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 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박준
그곳의 아이들은
한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고
.......(중략).......
이어진 길마다
검다고 했습니다
내가 처음 적은 답장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적었습니다
박준 시인의 시편들에서 드물게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태백은 한물 간 탄광촌이어서 이이들은 그악스럽게 울고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다. 절망적인 삶의 터전이다. 모든 길은 검어 빛조차 검은 빛이다. 처음 쓴 답장에는 갱도에서 수맥으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구겨버리고 고쳐 쓴 편지의 처음 문장이‘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는 글이다. 돌아갈 때쯤은 우기여서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을 거라는 문장 속에는 가정법이기는 하지만 그리운 사람에 대한 고백이 숨어 있다. 그렇기는 해도 이 시는 태백이라는 폐광촌의 팍팍한 삶을 보여주는 삽화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