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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의 세설(細說)

한국교회,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용인신문] 삼손이 헌헌장부의 때 다시 올 수 없는 아름다운 시절에는 델릴라에게 빠져 영안이 흐렸으며 눈을 떴을 땐 낙타 턱뼈로 삼천 명을 쳐 죽였으며 그가 눈을 감았을 땐 신전을 무너뜨려 그 안에 모든 사람을 깡그리 죽였다. 그는 행운아다. 눈이 멀어 괴물이 된 자신을 보지 못했으니까. 삼손을 신전에 묶지 않고 그냥 보내 줬더라면 모두가 살지 않았을까.

 

어둠을 많이 본 사람은 눈이 먼다<마6:22-23>. 삶이란 가끔이지만 살아온 순간들이 나를 정의할 때도 있다. 이 점이 인간이 종교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종교의 가르침은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에서 시작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눅9:18>’는 예수의 돌연한 물음은 삶의 표층이 아닌 깊이다. 그 중심에 실천으로서의 기독교가 있다. 가장 으뜸가는 계명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예수는 이렇게 답한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막12:31>.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며<마5:39>,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에 나오는 말이다.

 

이 숨 막히고도 절대 불가능한 명제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머리 숙이는 것 말고는 뭐가 있을까. 이처럼 위대한 말씀을 곁에 두고도 냉장고 속의 썩은 우유 같은 인생을 살아온 날 수가 또 얼마랴. 그럼에도 본적도 만난 적도 없는 신을 사랑하겠다며 일요일이면 꾸역꾸역 교회로 간다.

 

2000년 전 유대 땅 촌구석 말구유에서 창업해 골고다언덕의 십자가로 끝난 삼십이삼년 남짓 살다간 로마 사형수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이단으로, 혹자에게는 사이비로, 다양한 스토리를 낳으며 현재진행형이다.

 

연전에 어떤 교회에서 죄를 회개해야 한다며 자식이 엄마의 뺨을 때리고 아내가 남편의 귀뺨을 후려치는 행태의 예배가 보도되어 세상을 경악케 했다. “뭐 저렇게 하고, 전 재산을 바쳐가면서 예수를 믿어야 하나?”라고 다수의 범부들은 생각했으리라. 그런데 이번엔 또 다른 교회에서 신앙훈련인지 고난훈련, 똥까지 먹게 했다는 기사가 나와 비아냥을 낳았다. 설마 목사가 먹으라 했다고 진짜 먹었단 말인가.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목사님의 강간기사다. 이런 부류의 이야기는 하도 많이 들어서 귀가 무뎌진지도 오래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하였도다<마22:29>. 사실 여부를 떠나 한국교회 더 이상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