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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 시대를 사는 변경 주민들

이상엽(사진작가)

 

[용인신문] 코로나 19는 내게도 작업의 변화를 줬다. 사람이 모이는 강연의 줄줄이 취소됐고 전시장은 문을 닫았다. 대신 홀로 카메라 들고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래서 주로 찾은 곳이 우리 북쪽 변경이랄 수 있는 파주 연천 철원 같은 곳이다. 비무장지대에 가까운 이곳은 한반도 평화에 무척 민감해 남북관계 호전과 악화에 일희일비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통일이 다가 온 것처럼 전방 GOP(관측초소)들이 폭파되더니 얼마 전에는 관계가 악화 돼 개성의 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반전이 일어나고 말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을 찾은 나 역시 주민들의 그런 분위기를 금세 파악한다. 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관광객을 더욱 찾을 길이 없다. 그렇게 텅 비고 낡아가는 마을을 찍는 나도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이 사진 작업은 통일부의 ‘DMZ 지도’라는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3년에 걸쳐 비무장지대와 인근 지역을 취재해 방대한 북쪽 변경의 정보를 지도라는 형식으로 담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자마자 장관을 사직했고 이 사업도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면 작은 기록 사업마저 추진하던 기관의 변동으로 취소되는 판에 현지 주민들의 절실한 숙원 사업도 남북관계에 이리저리 흔들린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란 점이다. 자주 들렀던 연천이 그렇다. 연천의 면적은 용인시와 비슷하지만, 인구는 3만 명에 불과하다. 인구 차는 30배지만 경제력의 차이는 100배는 될 것이다. 읍내를 돌아보는 데는 단 10분이면 족할 정도로 작고 초라하다. 이곳의 가장 큰 사업이 경원선 복선화 공사인데 요즘 같은 분위기로는 언제 완공될지도 알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 나라 현대사가 그렇듯 한국전쟁 이후 국가가 결정하고 번복하는 정책에 늘 상 숨죽이고 피해를 봐야 했던 것도 연천 같은 접경지역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는 토지의 사용도 거주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늘 상 제한받고 불편을 강요받는 2등 시민들이었던 것이다. 재일교포 2세 지식인 강상중 교수의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이 요즘 대한민국을 읽는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재일교포 최초의 동경대 교수를 역임한 강 교수의 이 책은 메이지 유신 후 강해진 국가주의의 그늘에서 여전히 소외된 일본 국민의 아픔을 찾아다닌 기행문이다. 그는 “한국은 이번 코로나 19 팬데믹 대처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의 강한 모습이 발휘되었습니다. 서서히, 하지만 분명 한국은 ‘강한 사회’와 ‘강한 국가’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국가로 이행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 상황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증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 자체가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지적처럼 다양한 삶의 방식이 보증되는 한국인가를 돌아보면 이 나라 국민으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수만은 없다. 일본처럼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도 강한 국가주의를 칭송하는 ‘국뽕’이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열면 이런 영상이 열에 반은 된다. 경제 정치 사회 문화예술 할 것 없이 한국을 세계적이라고 칭송하는 영상에 시청자들은 중독된다. 그리고는 우리가 무시하고 방관하는 지역의 가난과 열악한 삶에 대한 공감과 동정 대신 혐오가 난무한다.

 

얼마 전 연천군에서 의뢰를 받아 지역 관광해설자들을 위한 강연을 했다. 이들에게 사진 기록의 중요성을 알리고 지역의 훌륭한 유산을 발굴하자는 취지로 “연천에서 가장 좋은 것이 뭐냐?”는 내 질문에 “코로나 없는 거요”라는 답이 왔다. 참 난감한 일이었다. 그 답의 뜻은 사회적 거리도 필요 없는 인구수에 사람이 모일만한 장소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뭐든 K로 시작하는 국뽕의 시대에 우리 주변의 이웃들은 어찌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