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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길ㅣ두르가 랄 쉬레스타/유정이 역

        두르가 랄 쉬레스타/유정이 역

 

가다가 멈추고

내가 나에게 물어본다

우리 모두 어디로 가고 있나

분주하기만 한 발걸음

헐떡이는 숨 어디로 가고 있나

길은 목적지도 없는 맨 얼굴

미끈거리는 허벅지만 보여준다

 

산과 산

들과 들

사람과 사람 사이

길과 길이 잇대어진

얽힌 세상 어디에도

 

목적지 없는 목적지만

무더기무더기 놓여 있다

목적지 없는 목적지만

무더기무더기 놓여 있다

 

두르가 랄 쉬레스타는 네팔의 국민시인이다. 그의 시는 종교적이고 명상적이며 철학적이다. 그러면서도 현실정치에 대한 관심과 구체적인 사회인식을 드러낸다. 그를 『누군가 말해 달라 이 생의 비밀을』이라는 번역 시집으로 한국에 소개한 역자가 유정이 시인이다. 번역이 유려해서 마치 유정이의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길」은 수많은 시인들의 노래가 된 제목이다. 길을 인생의 행로로 파악하고 있는 것도 새롭지는 않다. 이 시가 새로운 것은 ‘목적지 없는 목적지만’이라는 그의 인식이다. 길은 언제나 시작이 있고 끝이 있게 마련이다. 길의 끝이 목적지가 된다. 그러나 그는 목적지 없는 목적지가 인생이라는 것이다. 길의 끝에 죽음이라는 목적지 아닌 목적지가 기다리고 있다는 그의 인식은 철학적이고 실존적이다. 이미 그는 첫연에서 '길은 목적지도 없는 맨 얼굴’이라고 갈파했다. 우리들은 목적지 없는 목적지를 향해서, 죽음을 향해서 바쁘게 가고 있는 것이다. ‘문학의 숲’ 간 『누군가 말해 달라 이 생의 비밀』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