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마트
신영배
환한 곳으로 움직였다
밤새 반짝인 것에 가격이 붙었다
죽어가는 것의 진열을 보았다
헤매는 길도 계산에 넣었다
책은 표지만 팔렸다
섬뜩함에서 뛰어내렸다
물을 한 덩이 한 덩이 셌다
흐르는 문장을 비추겠다
이미 낡았다
하얗게 질려서 나왔다
신영배는 1972년 충남 태안에서 태어나 2001년 『포에지』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 시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물의 이미지다. 이미지를 넘어 물은 시의 몸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 그녀의 물은 범람하지도, 급류로 흐르지도 않는다. 시인이 물방울을 더듬어 사물을 적시는 세공의 과정으로서의 물이다.
시적 화자는 마트에 있다. 그 마트에 이르기까지 여러 마트를 헤맸다. 그렇게 도착한 환한 곳이 화자가 진열대를 기웃거리고 있는 지금의 마트다. 진열대의 상품들은 모두 가격이 붙어 있지만 팔리지 않거나 생물들은 그곳에서 죽어갔다. 마트에서도 책을 판다. 마트에 온 사람들은 책을 사지는 않고 표지만 훑는다. 팔리지 않는 책, 먹거리만 팔리는, 지적 빈곤의 섬뜩함에 몸을 떤다.
화자는 마트에서 생수를 샀을 것이다. 한 덩이 한 덩이라고 물병을 셌다. 그녀는 물을 물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생수 한 병은 물송이 보다 커서 한 덩이라고 셌을 것이다. 투명한 생수에 흐르는 문장을 비추면 문장은 이미 낡은 문장이다. 화자가 하얗게 질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문학과지성사' 간 『물안경 달밤』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