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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너무 다른 곰 팔자(八字)

홍승표(시인· 전 용인시부시장)

 

[용인신문] 1981년 봄, 광주군청에서 일할 때, 팔당 상류 퇴촌면에 반달곰이 나타났다. 그 후, 전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취재기자로 북새통을 이뤘다. 속칭 포수로 불리는 전문 엽사(獵師)를 동반한 경찰이 추적에 나섰고 언론은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방송을 했다. 공보업무를 담당한 나도 상황실이 마련된 퇴촌면사무소에 상주하며 출입기자는 물론 중앙에서 내려온 기자들의 취재활동을 도왔다. 경찰과 엽사들이 일주일을 산등성이와 계곡으로 곰을 쫓아다닌 끝에 결국, 곰은 총을 맞고 숨을 거두었다. 이후, 곰쓸개는 D제약회사에 1600만 원에 팔렸는데 유명 탤런트를 내세워 간 기능 개선제품광고를 해 대박을 터트렸다. 광주군은 이 돈으로 ‘반달곰 장학금’을 운영하고 있다.

 

“부시장님! 천리에 곰 두 마리가 탈출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2012년 7월, 용인시 부시장으로 일하기 시작한 둘째 토요일 날, 비서실 직원이 아침 일찍 전화한 것이다. 차를 보내겠다는 걸 마다하고 급히 택시를 타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벌써 경찰과 공무원, 엽사들이 출동해 있었다. 주민들은 불안에 떨며 안절부절못했고 당황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당일, 2마리 모두 사살을 했지만 아무런 죄 없이 죽어간 곰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7월 6일 다시 용인의 같은 곰 사육농장에서 반달가슴곰 2마리가 탈출했다. 그중 1마리는 사살되었지만 남은 1마리는 행방을 찾지 못하고 추적 중이라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경기관광공사에서 일하던 2016년 3월에는 김포공항에서 다른 곰을 만났다. 삼성 에버랜드가 특별전세기로 중국에서 한 쌍의 판다를 들여오는 환영 행사에 초청을 받은 것이다. 주한 중국대사와 용인시장과 지역 국회의원 등과 함께 사랑을 주는 보물이라는 ‘아이바오(愛寶)’와 기쁨을 주는 보물이라는 ‘러바오(樂寶)’를 국빈(國賓)처럼 맞이했다. 이들 판다는 큰 사랑과 극진한 보호를 받으며 지내다가 지난해 7월, 아기 판다를 낳았다. 복을 주는 보물이라는 ‘푸바오(福寶)’의 첫돌을 맞아 7월 한 달 동안 판다를 위한 특별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펜트하우스(penthouse)와 옥탑방보다 더 극명하게 대비되는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종(種)이 다르지만 같은 곰인데 사육환경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1980년대 초, 정부는 농가의 소득 증대를 위해 사육 곰 수입을 장려했었다. 정부 정책에 따라 많은 사육 곰을 들여온 농가들은 곰을 좁은 철장 속에 가둬 사육해왔다. 농가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떠오르면서 곰 사육장과 사육 두수가 많이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국제적 멸종위기 종으로 지정되면서 수출입이 금지되고 판로가 막히고 말았다. 사육 곰은 10살이 넘으면 웅담 채취가 가능하도록 했으나 이마저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2012년 용인에서 곰 탈출 소동이 있었을 때도 사살된 곰 복부 부위에 구멍 자국이 있어 살아있는 곰에게 호수를 꽂아 쓸개즙을 강제 추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곰을 사육하는 목적이 쓸개가 아니라면 굳이 힘들여 사육할 이유가 없는 게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증식 금지를 위해 중성화 사업을 진행하고 인공번식을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농장은 소유한 곰들을 ‘웅담 채취용’에서 ‘전시 관람용’으로 용도 전환한 후, 사육해왔다. 그동안 환경부는 사육 곰의 불법 개체증식을 적발해도 수용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곰을 돌려주었고 사육허가도 유지되었다. 적발된 개체의 중성화조차 시행하지 않는 등 그야말로 수수방관하고 있는 형편이다. 다행히 ​전남 구례에 2024년까지 자연 상태의 야생 방사장과 의료시설을 갖춘 보호시설을 만든다고 한다. 반달가슴곰 보호시설이 만들어지면 사육 곰을 보호시설로 옮겨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하루빨리 보호시설이 완성돼 모든 사육 곰들이 철장에서 나와 남은 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