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송나라 경공景公은 국방부 장관쯤 되는 지위에 있는 사마환퇴司馬桓魋를 그리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쪽은 죽이고자 한쪽은 살아남고자 그야말로 물밑 생존경쟁이 치열하던 차에 사마환태가 선수를 쳐서 이른바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은 실패하고 사마환퇴는 제나라로 달아난다. 참고로 기억할 것은 당시 장관 지위 이상 쯤 되면 요즘 말로 하면 전관예우라 해서 외국으로 도망? 가면 그 직위에 준하는 대우를 해준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애공哀公 14년 조 기록에 의하면 이 반란에 가담한 형제 친족 모두가 죽임을 당했는데 당시 향리의 목민관으로 있던 사마우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아 목숨에는 지장 없으나 목민관 직위에서 쫓겨나다시피 하여 그야말로 삶은 핍절과 곤두박질로 일색한다. 그런 후 공자 문하에 의탁해 공부하고 있던 어느 날 형 사마환퇴가 비운에 횡사했다는 소식을 인편으로 전달받는다.
사마우는 눈물 찬 아픔으로 ‘사람마다 형제가 있거늘 나만 없구나’를 되뇌며 위로받기를 거절하고 있는데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위로를 한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 있고 부하고 귀한 것은 하늘에 달려 있거늘 뭐 그깟 일로 형제가 있냐 없느냐를 운운하느냐며 위로인지 꾸지람인지 모호한 말을 위로랍시고 해준다(논어안연12-5문장).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자하子夏의 아들이 죽었다. 자하는 상심한 나머지 얼마나 울었던지 마침내 눈이 멀었다. 여기서 나온 상명지통喪明之痛 고사가 유래한다. 도저히 보다 못한 증자가 찾아가서 자하를 엄히 꾸짖자, 자하는 내가 잘못했다며 하늘을 우러러 사과를 하는 장면이 예기 곡례장에 기록되어있다. 그럼에도 자하는 사마우에게 그따위로 위로랍시고 말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는 기록은 없다.
제 자식의 죽음은 귀하고, 남 형제의 죽음은 하찮다? 마음보가 이따위라면 그 심성은 참으로 고약스럽다. 요즘 검찰 출신 국회의원 아들인 혹자께서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았다는 보도가 떴다. 이일은 대한민국 땅에서 검찰 출신자들에 대한 사회적 눈높이의 상한선이 어디까지인가를 보여주는 잣대라 하겠다. 물론 저가 잘나서 받는다면야 500억인들 뭔 상관이랴마는 세상은 내 생각과 달리 먼저 알아서 박박 기는 경우가 있다는 데 있다. 같은 세대에 살고 있는 20·30세대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한 번쯤은 반드시 그리고 분명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누가 지역구를 위하는 국회의원이고 어떤 후보가 국민을 위하는 대통령감인지를. 우리 시대에는 가난한데도 유독 형제들이 많았다. 살다 보면 형제간에 험한 말도 할 수 있는 거고 때로는 싸울 수 있는 거다. 왜냐, 형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