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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폭탄을 제거할 것인가? 폭탄을 설치할 것인가?

오룡(평생학습 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레거시 미디어를 멀리하게 된다. 걱정과 안심, 분노와 절망이 충돌하며 만들어낸 반응이다. 대신 뉴미디어가 전하는 보도는 연일 흥분지수를 갱신한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이성복의 시, <그날>처럼 하루하루가 선거의 마지막 날 같다.

 

후보들에 대한 여론조사는 ‘삐삐롱 스타킹’처럼 천방지축이다. 정호승의 시를 빌리자면,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는 의도인지. ‘너’란 존재가 누구인지, 언론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진흙탕 선거는 전선이 없다는 의미다. 이럴 때일수록 명확한 전선을 만들면 된다. 어떤 선을 그어서 선에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전략은 쉽게 통할 때가 있다. 아무리 좋은 전략도 통하지 않는 이유는 익숙함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조금 다르겠지만, 다수의 유권자는 이미 결정한 상태일 것이다. 그러니 결정하지 않은 소수에게 집중할 때다. 20대 대선은 모든 예상과 어긋나는, 익숙하지 않은 선거다.

 

강자는 자신이 강자라는 인식이 있으면 연대한다.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한 순간에는 강자의 체면은 없다. 똑똑한 강자들은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시각에서 연대의 이유를 파악한다. 특히 자신과 상대방의 이익을 모두 파악한다. 그런 후에는 싸우지 않고 이기려 한다. 그리고 싸우지 않고 이긴다. 그러므로 이기는 게 아니라 굴복시킨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고 싶다면 자신과 상대방 즉, 비아(非我)와 아(我)는 분명하게 선을 긋자. 비아(非我)는 적이며, 아(我)는 나다. 내가 위태롭지 않으려면 적을 먼저 알아야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하나의 문장으로 유권자를 ‘혹’하게 한 후보. 후보의 행동이 뻔뻔한데도 위태롭지 않다. 이런 후보를 위태롭게 하려면 지뢰와 매복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약자들은 강자인 비아(非我)를 의외로 많이 사랑한다. 선거철이면 증상이 두드러진다. 이맘때에는 강자인 비아(非我)도 약자의 대변자였다고 커밍아웃을 매일 하고 다닌다.

 

덧붙여서 강자들은 자기 사람들은 철저하게 보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들의 주장대로 돈이라도 줘서 지켜준다. 사람들의 심리는 모호하다. 강자들의 보호에는 열광한다.

 

중국의 전국시대를 살았던 순자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이익을 좋아하는 성질이 있어 다른 사람과 싸워 이기려고 하므로 타인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하게 된다”라고 주장했다.

 

악한 자, 또는 강자들은 자신들과 다름을 결코 용서하지 못한다. 용서하지 않으려 한다. <파리대왕>에서 윌리엄 골딩이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의 문명과 질서가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는가?’를 아느냐고.

 

변화는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망가지지 않을 세상을 만드는 데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든 하루아침에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의 세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만약, 온다면 공포겠지만. 공포는 현재가 아닌 미래의 반응이다. 그러니 생각은 조금 필요하다. 자폭할 것인지, 폭탄을 제거할 것인지. 투표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바뀐다면, 오늘 이 글은 폭탄이다.

 

사족. 개념 없이 권력을 휘두르다 보면 권력은 사유화된다. 타인의 고통을 즐겨온 권력에 반성은 없다. 반성 없는 권력의 집권은 통치(痛治)다.

 

정말 사족. 설마, 선무당이 칼을 잡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