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정치란 모든 국민을 편안하고 잘살게 해주는 것, 그게 정치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그런 사람은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지 말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악마보다 무섭다는 교회 장로가 정치를 하고, 강철 군화를 신은 군인이 정치를 하고 투사가 정치를 했다. 이제는 얼굴이 알려졌다 싶으면 정치판으로 뛰어든다. 그 속에는 부지기수가 이런저런 일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자들로 가득하다. 예기 책에 이르길 천하 모두는 백성의 것이니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가려서 정치를 맡겨야 백성의 삶이 고되지 않다고 했다. 노나라 정공 14년 56세가 된 공자는 대사구가 되어 법 집행관으로 임한지 3개월이 되자 그의 온용덕화정책이 향리 구석에까지 미쳐 물건을 사고팔 때 속이는 법이 없으며, 남녀 간에 음란한 일이 사라졌으며,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아 여행자가 노나라에 오면 관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잃은 물건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공자세가편에 나오는 말이다. 도불습유道不拾遺라는 말이 있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백성이 사는 게 풍족해져 남의 물건을 탐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형벌이 엄하면 남의 물건에 손댈 엄두를 못낸다는 의미도 있다. 이는 패도시대의
[용인신문] 노나라 실권자 계씨가 자신의 세를 넓히고자 부용국인 전유라는 작은 나라를 무력으로 빼앗으려 하는데 계씨 밑에서 벼슬하고 있던 염구와 자로가 스승 공자에게 전후 사정을 말하며 대책을 구하니 공자는 되려 제자를 꾸짖으며 염구에게 말한다. “군주를 모실 능력이 안되면 그만둬라. 군주가 위태로운데도 붙잡아주지 못하고 군주가 넘어지는데도 부축해주지 못한다면 그따위로 보좌하는 신하를 어디에 쓰겠느냐”(논어계씨편) “신하가 군주를 잘못 모시면 그 피해는 곧 백성의 몫이다.”라는 것이 공자가 제자를 엄이 한 이유다. 관중은 “백성을 편안히 하는 것이 치국의 요체요, 실천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라고 직시한 바 있다. 여기서 정치의 근본은 시작된다. 곧 안민安民이다. “백성이 편안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을 일러 좋은 나라라고 말하는 거다. 유학에서는 이를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 한다. 윤리와 도덕으로 자신을 완숙은 아니어도 일정량 경지에 올려놓은 뒤에라야 남을 다스린다는 말이다. 제 한 몸도 건사 못하는 주제에 무슨 남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랴. 한나라 제왕 무제는 번거롭고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종종 황제의 관冠을 쓰지 않고 놀았는데 간관諫官 급암汲
[용인신문] 본래 벼슬이라는 것은 백성을 위하는 자리이다. 벼슬한다고 우쭐대거나 거들먹이거나 혹은 백성들보다 더 호화롭게 산다면 잘못이라 할 순 없겠지만 백성보다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는 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며 참외가 익은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라 했다. 남에게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말라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고래로 백성의 삶이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등 따습고, 밥 배불리 먹고, 한데서 잠자지 않고, 여기에 하나 더 욕심을 추가한다면 자고 난 다음 날 아침 일하러 갈 데가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이는 곧 국가의 가장 급선무는 민생이라는 말이다. 민생을 제외한 모든 것은 부차적인 일이다. 맹자의 말 중에 “길을 갈 때 알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면 목적지에 덜 힘들면서 쉽게 이른다.”라는 말이 있다. 바꿔말해서 “길을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목적지에 가지도 못할뿐더러 가는 과정도 힘들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맹자는 이것을 천하를 얻는 방법으로 풀어낸다. 천하를 얻는 데에는 방법이 있다. ‘득천하유도得天下有道’ 백성을 얻으면 바로 천하를 얻는 것이다. 천하를 얻는 방법이 이렇게 쉽다니. 맹자 이
[용인신문] 맹무백이 “자로는 어진 사람입니까?”하고 물으니 공자는 “모르겠다.”고 답한다. 자로는 공자의 수제자로 평생을 함께 해왔는데 스승 공자가 자로를 모른다는 말이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이에 갸우뚱하면서 또 묻는다. “자로는 어진 사람입니까?”그러자 공자는 마지못해 답한다. “자로는 천승지국 나라에 군대 정도는 담당하겠지만 그가 어진지는 모르겠다.” 듣고 있던 자공이 묻는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백성을 잘 먹고 잘살게 해주면서 환난과 고통을 건져준다면 어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하니 공자가 쾌히 답한다. “어질다 뿐이겠는가. 성인이지! 요임금과 순임금도 못한 일이다.” 공자는 인에 대하여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공자가 인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는 데는 논어를 통털어 이 대목이 유일이다. 백성을 잘 먹고 잘살게 해주는 것, 환란과 고통에서 전져 주는 것, 그런 사람을 인仁하다 한다. 앞 전 시대에는 가난은 임금도 어쩌지 못한다는 말로 백성들의 궁핍과 고통을 정당화시키면서 외면해왔다. 그러고는 저들끼리 권력의 끄나풀을 부여잡고는 배불리 먹으면서 부를 물려주는 것으로 벼슬의 백미로 삼았다. 그래서 나온 말이 권력의 진실은 불편하고 역겨운
[용인신문] 만년의 공자가 쓴 춘추春秋는 약 1만 6000여 자의 기록으로 중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편년체編年體 사서史書다. 이 책은 세 권의 해설서를 갖는데 좌구명이 쓴 춘추좌씨전, 공양고가 쓴 춘추공양전, 곡량적이 쓴 춘추곡량전이다. 이를 춘추삼전이라 한다. 공양전과 곡량전은 애공 12년까지의 기록이고, 춘추좌씨전은 애공 14년까지의 기록이다. 이런 차이는 공자주유철환이후 28세에 입문한(이본엔 25세 입문이라 함) 스승보다 44세 어린 제자 복상卜相자하子夏가 춘추를 제자 곡량적에게 가르치면서 애공 12년조 까지만 가르친 탓이다. 곡량적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인 자하의 문도로 자하에게서 춘추를 배워 공자의 춘추를 최초로 의義의 관점에서 해석해낸 인물이다. 권력을 틀어쥐고, 그른 것을 숨긴 자는 그 죄가 도망할 곳이 없게 했으며, 백성들을 가난하게 하고 저들만 호위호식하는 군주는 그 이름이 숨을 곳이 없게 했다. 이처럼 춘추곡량전의 해석은 공자가 지은 노나라의 군주들의 행적을 밝히는가 하면 역사를 보는 안목을 의義의 관점에서 보도록 해석을 한 것이다. 공자작춘추설孔子作春秋說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맹자다. 맹자 등문공장구하9-7.8문장의 기록은
[용인신문] 정치의 시작은 뭐니뭐니해도 백성의 생업을 안정시키는 데서 비롯되며 환과고독을 돌아보는 것으로서 정치의 첫 의무는 출발된다. 고래로 민심이라는 말이있다. 백성의 마음으로 요즘으로 치면 국민의 마음이다. 서경에서는 민심을 천심이라 했다. 맹자는 이를 민본주의라고 풀어 말한다. 맹자진심장구하편에 이렇게 기록한다. 백성은 귀하며, 사직은 그다음이며, 임금은 하찮다(민위귀民爲貴 사직차지社稷次之 군위경君爲輕) 요즘은 이게 뒤집어져서 말로는 민주라며 국민이 주인이라고 떠들어대기는 하지만 정작 소외받는 것 또한 국민이다. “임금이 가장 귀하고, 백성이 가장 하찮다”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천하를 얻으려면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이 말은 만고까지는 아니어도 천고의 진리쯤 되는 말이다. 천하 누구도 백성의 마음을 잃는다면 그길로 끝이다. 맹자이루상편의 이 장면은 꽤 서사적이다. 걸왕과 주왕이 천하를 잃은 것은 백성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명징한 말이 또 있을까. 백성들이 두 임금의 모가지를 날려버렸다는 말이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채중지명편蔡仲之命篇에 민심무상民心無常이라는 명문이 있다. 백성의 마음은 일정치가 않다는 말이다. 득
[용인신문] 민심을 거스리고 살아남은 정권은 없다. 오만한 정권. 거기다가 무능하면서 도덕적으로 흠결까지 있다면 이런 모질이 삼박자 정권에 대한 국민의 답은 회초리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철인 순자는 자신의 책 순자 왕제王制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 물은 배를 뜨게 하지만 물은 배를 뒤집기도 한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흔히 군주민수君舟民水로 통하는 말이다. 다음 구절은 이렇다. 위衛나라 성후成侯 사공嗣公은 세금도 잘 거두고 술수도 잘 부렸지만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잔여임기 1년여쯤 남긴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4.7 재보궐선거에서 눈에 확 드러나는 표차로 참패를 했다. 관자管子권21 66편 판법해版法解편은 이렇다. 백성이 화가 났음에도 깨닫지 못한다면 백성은 스스로 갈 길을 도모한다(중지소분衆之所忿 과불능도寡不能圖). 대중이 분노하면 그 어떤 정권도 감당할 수 없다. 촛불로 태어난 문재인 정권이 그걸 벌써 잊었다면 그 정권은 보나마나이다. 명심보감에 맹자의 입을 빌어서 이렇게 경고한다. 순천자 존하고 역천자 망이라. 이는 곧 백성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으면 그 정권은 살아남는 거고 반대로
[용인신문] 맹자가 천하유세를 마치고 고향 땅에 돌아온 노년의 어느날. 등騰나라 군주 등문공騰文公은 어려서 그에게 배운 인연으로 맹자를 국정자문위원으로 초빙한다. 그러고는 거두절미한 채 불쑥 묻는다.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합니까?” 이에 대한 맹자의 답변은 간단했다. “백성들을 잘살게 해주면 백성들 마음도 변치 않는 법이지요.” 이게 저 유명한 유항산有恒産 유항심有恒心이다. 쉽게 말해서 정치는 민심이요, 민심은 백성의 배부름에 있다는 항산항심恒産恒心이다. 이것을 논어 자로편에서 공자는 염유와의 대화에서 말한다. 공자께서 위나라에 갈 때 염유가 수레를 몰았는데 공자가 “백성들이 많구나.”라고 말하니, 염유가 묻는다. “백성이 많아지면 무엇을 해야합니까?” 그러자, 공자는 답한다. “백성을 잘살게 해줘야지.” 염유가 또 묻는다. “이미 잘살게 해 줬으면 뭘 더해줘야 합니까?” 공자는 말한다. “사람의 됨됨이를 가르쳐야 한다.” 이른바 선부후교先富後敎이다. 이보다 더 앞선 시대에 관자가 있었다. 관자는 관자책 치국 편에서 말한다. “무릇 치국평천하의 길은 반드시 백성을 잘살게 하는 데서 시작되며, 백성들이 잘살면 나라 다스리는게 쉽고 백성들이 잘살지 못하면 나라
[용인신문] 재야의 공자는 정치적 질문에 쾌도난마로 군주들로부터 등용의 요구가 빗발친다. 특히 제나라 경공이 공자를 등용하려 했으나 재상 안영이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 것을 염려해 강력히 거부해 좌절된다. 이때가 노소공 20년, 공자 나이 30세다. 이 일로 20년 후 공자가 노나라 사공이 됐을 때 노제회맹에서 제나라는 엄청난 크기의 땅을 공자에 의해 빼앗긴다. 암튼 이것은 훗날 얘기고, 공자는 계평자의 뒤를 이은 계환자의 천거로 노나라 제후 정공에 등용되어 노나라 중도현의 중도재中都宰, 곧 현령縣令으로 부임한다. 이때가 기원전 501년 51세 때의 일이다. 1년간의 중도재 노릇은 백성을 살찌우는 예도소강禮道小康 정치로 여러 제후들이 공자를 모셔 가려 하자 당황한 군주는 기원전 500년 공자 나이 52세 초에 중앙부처의 건설교통부장관에 해당되는 사공司空의 직을 경유해 그해 겨울, 노나라 정공定公 10년 기원전 500년 공자 나이 52세 후반에 부장 검사격인 소사구小司寇로 임명한다. 3년 후인 55세 중반엔 대사구大司寇에 이른다. 대사구는 삼경三卿으로 사도司徒 · 사마司馬 · 사공司空을 감찰 관리하는 검찰총장 위치에 해당되는 직위다. 이 자리는 대대로 군주나 대
[용인신문] "노예도 인간이다.”라고 주장한 이는 묵자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라고 외친 이도 묵자다. 그는 공자 사후 다음 해인 기원전 480년경에 태어나 390년경에 사망할 때까지 춘추시대 말부터 전국시대 초까지 극심한 혼란기를 살다간 인물이다. 묵자의 말 중에 묵비사염墨悲絲染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옛날 초동교서로 천자문에 나오는 말인데 묵자는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슬퍼했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백성을 다스리고자 하는 치자는 염당染當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땅하게 물들여 져야’ 함이다. 염당의 출발은 공자의 인에서 비롯되며 맹자에 이르러 양혜왕과 대화에서 의를 더해 인의仁義로 치자의 덕목으로 삼는다. 이를 백성들에게 실천할 때는 곧은 자만이 치자가 될 수 있다. 하여 곧을 직直으로 풀어낸 이가 후학 주자이다. 이를 주자의 아들들에게 어려서부터 작심하고 훗날 지방읍의 읍재가 되기 위해 곧음을 가르친 이가 여조겸이다. 쉽게 말해서 곧지 못한 자는 치자가 되어서도 안 되고 목민관이 되어서도 안 되고 벼슬의 위치에 있어서도 안되다는 것이 주자의 생각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칠 수 없으니까 벗 여조겸이 이를 주자의 아들들에게 가르쳤다. 당시
[용인신문] 많은 재물과 높은 지위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재산과 지위를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누리려 해서는 안 된다. 가난함과 미천함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려다가 가난과 미천함에 처해 졌다면 그것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명심보감 안분편 8문장에 나온 말인데 이글의 전거는 논어 이인편 5문장이다. 공자의 이 말은 많은 부분에서 길고 긴 우등불가에서 풍찬노숙의 날들을 견뎌온 노인의 인자함 보다는 잘 벼리 된 칼날의 단호함이 느껴진다. 공자는 득남 후 불과 몇 년 후에 무슨 이유에선지 아내와 등을 진다. 그리고 눈에 흙이 들어가는 날까지 후취를 들이지 않았다. 당시 시대로 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임에 분명했다. 그런 공자에게 있어서 온화한 미소로 제자를 이끄는 스승의 모습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공자가 추구한 삶이란 ‘너 똑바로 정치해라.’가 그것이다. 논어의 문장 자체가 곧 정치다. 그럼에도 굳이 정치인이 되겠다면 급한 대로 육예를 어설프게나마도 익혀야 한다. 其一禮 마음의 사악함을 없애는 시경을 읽어라(讀詩). 其二禮 고대의 정치를 아는 서경을 읽어라(讀尙). 其三禮 빈부귀천의 예를 아는
[용인신문] 맹자의 독창적이면서 독보적인 주장 중 하나가 ‘나의 옳지 않음을 부끄러워하며, 너의 옳지 않음을 미워하는 마음’이라는 게 있다. 맹자 공손추장구에 나오는 말인데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마음’을 말한 것이다. 곧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양보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몸 바름을 행하기를 몸이 마칠 때까지 한다는 말이다. 바름은 ‘정의의 씨앗’이라는 말이다. 근자에 어느 당 대표가 자신의 성추행을 모두 인정하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례적으로 법정까지 안가고 마무리되는 듯하다. 그러나 방점이 여기서 찍히면 개운치 않다는데 다툼의 여지가 있다. 성추행 직후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 당한자 쪽의 고변이 있기 전에 먼저 대표직을 그만둔 것인지, 아니면 며칠을 그냥 살다가 당한 쪽이 걸고 넘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대표직에서 물러난 것인지. 이 물음은 인간의 속성에는 악마가 숨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이 어떤 일을 저질렀을 때 따라오는 말 중 하나가 ‘들킨 것만 한 번일 뿐이지....’라는 말이 있다. 공자는 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