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98 원(瑗) 요시마스 고오조 엄마 같은 그림자가 아이에게 “새끼줄을 묶어주는 거예요. 달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하고 말을 걸고 있다 (…) -------------------------------------------------------------------- 오늘부터 여름, 이라고 적습니다. 새삼스럽게 소중한 질문을 드려볼까요. 우리에게 시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치 시는 “엄마 같은 그림자가/“아이에게” 묶어주는 하나의 가는 선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달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혹은 어느 날 아침 미쳐버리거나, 미쳐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알랭 바디우는 “시의 표면에 있는 수수께끼에 관해 말하자면, 이 수수께끼는 오히려 시의 작용들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임이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이 문장을 오늘의 시인 요시마스가 읽는다면, 어느 날 아침 미쳐버리거나, 미쳐버리지 않을 ‘자유’에 대해 가만가만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않을까요. “시의 작용들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면서, 존중하면서 말입니다. 시의 내부로, 당신의 마음이라는 수수께끼 안으로! 시인의 강조점처럼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97 달리기 박희수 어서 오세요, 이리 오세요, 뛰어오세요 깔깔거리는 꽃의 덩굴들이 이리저리 뒤얽혀 있는 흔들리는 들판으로 달려오세요 무서워 마세요, 움츠러들지 마세요 눈꺼풀로 눈을 감싸듯 숨 가쁜 호흡에 안겨 달려가세요 당신의 땀은 꽃씨들처럼 사방으로 사방은 당신의 땅처럼 꽃씨들로 꽃씨들은 당신처럼 숨 가쁘게 숨은 당신이 타고 가는 자동차, 자동차는 당신이 내쉬는 숨 빛의 그림자와 빛의 실선 서로를 따라잡으려 부단히 뛰어가는 두 쌍둥이 한 호흡 달려가세요 달려가세요 (…) -------------------------------------------------------------------- 시적 주체는 우리를 향해 “어서 오세요, 이리 오세요, 뛰어오세요” 말하고 있습니다. 외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까요. 중요한 지점은 장소, “흔들리는 들판”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지요. 어쩌면 우리는 그곳으로의 도착이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약속처럼 들려오는 “무서워 마세요, 움츠러들지 마세요”라는 목소리. 방법은 전무, 그저 “숨 가쁜 호흡에 안겨 달려가”는 수밖에 다른 동력은 없겠지요. 시인의 첫 시집『물고기들의 기적』과 함께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96 분홍 나막신 송찬호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깎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꼬옥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짓찧어진 맨드라미 즙을 나막신 코에 문질렀다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와도 이 춤을 멈출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 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을 발명하셨으니 -------------------------------------------------------------------- 먼 분홍과 가까운 분홍 사이를 서성이는 봄날입니다. 그대에게 선물 받은 신발이라니, 발걸음마다 꽃이 피어나는 느낌이겠지요. 걷는 동안 꽃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득하겠지요. 내 발에 맞는 신발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신발에 내 발을 맞추는 일. 저만치 피어있는 맨드라미의 꽃말은 열정.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오도록 마음을 다 하는 것은 열정입니까, 열정이 아닙니까.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사랑예찬』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사랑의 선언은 우연에서 운명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어떤 경우든 선언을 위한 전제 조건은 용기일 것. 자신 스스로에게 외치고 세상에 외치는 법이니까. 이어서 철학자는 힘주어 적
▲ 앞줄 좌로부터 셋째 정주백 총교우회장, 넷째 송동섭 경영대학원장, 다섯째 장호성 총장, 여섯째 윤석기 총동창회장을 포함한 입학생들이 지난 12일 오후 6시 제12기 자산관리 최고경영자과정 입학식을 가졌다 단국대학교(총장 장호성) 경영대학원(원장 송동섭)은 지난 12일 오후 6시 메리어트 판교 서울호텔 코트야드홀에서 제12기 자산관리 최고경영자과정 입학식 행사를 가졌다. 이날 입학식은 염학수 분당세무서장, 두진문 시안파트너스 회장 등 입학생 43명과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내빈 격려사, 식사, 환영사 및 축사와 함께 다채로운 행사가 이어졌다. 자산관리 최고경영자과정은 1년 과정으로 지난 11기까지 경제계를 비롯한 각 분야 500여명의 주요인사가 수료했으며 앞으로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우리나라 자산관리과정의 역사와 맥을 이을 예정이다. 그동안 용산구청에서 받던 교육을 올해 4월 입학생부터는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국제관 최고경영자과정 강의실로 옮겼다. 이는 특성화된 교육프로그램을 서울 남부권의 활성화에 접목시키기 위함이다. 이날 입학생들은 지난 19일 개강을 시작으로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40분부터 오후 9시 40분까지 교육이 이뤄질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95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94 오늘의 결심 김경미 라일락이나 은행나무보다 높은 곳에 살지 않겠다 초저녁 별빛보다 많은 등을 켜지 않겠다 여행용 트렁크는 나의 서재 지구 끝까지 들고 가겠다 썩은 치아 같은 실망 오후에는 꼭 치과엘 가겠다 밤하늘에 노랗게 불 켜진 보름달을 신호등으로 알고 급히 횡단보도를 건넜으되 다치지 않았다 생각하면 티끌 같은 월요일에 생각할수록 티끌 같은 금요일까지 창들 먼지에 다치거나 내 어금니에 혀 물린 날 더 많았으되 함부로 상처받지 않겠다 목차들 재미없어도 크게 서운해하지 않겠다 너무 재미있어도 고단하다 잦은 서운함도 고단하다 한계를 알지만 제 발목보다 가는 담벼락 위를 걷는 갈색의 고양이처럼 비관 없는 애정의 습관도 길러보겠다 -------------------------------------------------------------------- 마음을 굳게 정하다, 봄날의 결심. 요즈음 무엇을 하기로 결심하셨는지요. 하지 않기로 결심하셨는지요. 누군가는 꽃과 나무보다 높은 곳에 살고, 누군가는 꽃과 나무와 눈을 마주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행용 트렁크가 서재일 때, 주인의 모든 발자국은 살아있는 문장이 되겠지요. 그러한 트렁크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93 청혼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조각처럼 -------------------------------------------------------------------- 여기 특별한 ‘청혼’이 있습니다.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 따로 있는 게 아니겠지만, 봄은 모든 사랑의 적기처럼 느껴집니다. 별들이 “벌들처럼 웅성거리”는 봄밤의 풍경이 떠오르지요. 여름날의 비를 주겠다는 밀어까지. 고요한 선언이 이어집니다.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시간에 아첨하지 않은 자는 세상에도 아첨하지 않으며 살아왔겠지요. 과연 “우리가 했던 맹세들”이 지켜질 수 있을까요. 서로를 찾느라 “술
▲ 수원의료관광센터-AKTC 협약식 수원의료관광센터(센터장 이강혁)는 지난 14일 외국인 환자를 수원시에 전략적으로 유치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한국중국어관광통역사협의회(이하 AKTC) 및 경기관광마케팅진흥회(이하 GTMO)와 MOU를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수원시가 한국 관광산업의 최대 수요처인 중국 관광객과 최일선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중국어가이드 6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AKTC와의 협력기반을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성란 AKTC 회장은 그동안 서울, 제주에 집중된 중국 관광객의 관심을 수원으로 돌리고 협의회 차원에서 수원시 의료시설과 연계한 관광 상품을 적극 홍보하는데 협조하는 한편 협의회 전체 회원에게 2016년 수원화성 방문의해를 알림으로써 중국 관광객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실천방안으로 수원의료관광센터는 AKTC 추천 우수통역가이드를 초청해 수원시 의료시설과 관광자원 및 2016 수원화성 방문의해를 홍보하는 팸투어, 수원의료관광 중국시장 진출 방안 토론회 개최를 추진하는 한편, 2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중국 최대 민간단체인 중국특장생 연맹의 한국의 별 행사의 한국 측 파트너인 GTMO와는 금년 8월 방문하는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92 아네모네 성동혁 나 할 수 있는 산책 당신과 모두 하였지요 사랑하는 이여 제라늄은 원소기호가 아니죠 꽃 몇 송이의 허리춤을 자른다고 화원이 늘 슬픔에 뒤덮여 있는 건 아니겠지만 안 잘리면 그냥 가자 꽃의 살생부를 뒤적이는 세심한 근육을 우린 플로리스트 플로리스트라고 하지 꽃범의 꼬리 매발톱 모종의 식물들은 죽은 동물들이 기어코 다시 태어난 거죠 거기 빗물에 장화를 씻은 사람아 가을의 산책은 늘 마지막 같아서 한 발자국에도 후드득 건조하고 낮은 짐승이 불시에 떨어지는 것 같죠 나의 구체적 애인이여 그래도 시월에 당신에게 읽어준 꽃들의 꽃말은 내 편지 다름 아니죠 붉은 제라늄 내 엉망인 심장 포개어진 붉은 장화 아네모네 아네모네 나 지옥에서 빌려온 묘목 아니죠 -------------------------------------------------------------------- 시인들의 시인 성동혁. 그는「리시안셔스」라는 시에서 “나는 이 꽃을 선물하기 위해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아네모네’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 그러니까 이별의 말들. 이원 시인은 그의 시에 대해 “얼핏 보면 고요하고 일상적인 풍경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91 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 같은 여자,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 시인이 노래하는 ‘한 잎의 여자’는 풀푸레나무에서 비롯되고 있지요. 풀푸레, 라고 발음하면 눈앞에 푸른 기운이 가득 맴돌게 됩니다. 낙엽 지는 넓은 잎의 큰키나무. 꽃은 5월에 새 가지 끝에 피고 열매는 9월에 익으며 물속에 넣은 가지가 물을 푸르게 만든다고 하여 물푸레라 한다지요. 수많은 나무 중에 물푸레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90 찬란한 봄날 김유섭 나무들이 물고기처럼 숨을 쉬었다 비가 그치지 않았다 색색의 아이들이 교문을 나섰다 병아리 몸짓의 인사말조차 들리지 않았다 물살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문구점 간판이 물풀처럼 흔들렸다 자동차가 길게 줄을 서서 수만 년 전 비단잉어의 이동로를 따라 느릿느릿 흘러갔다 물거품으로 떠다니는 꽃향기 속 수심을 유지하는 부레 하나 박제된 듯 정지해 있었다 위이잉, 닫혔던 귀가 열렸다 아이를 기다리던 엄마가 환해지며 비늘 없는 작은 손을 잡았다 꽃무늬 빗물이 찬란한 누구나 헤엄쳐 다니는 봄날이었다 --------------------------------------------------------------------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봄날’은 과거에 있을까요. 미래에 있을까요. 어쩌면 모든 ‘찬란한 봄날’은 현재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시인이 포착해 놓은 풍경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유년 시절과 함께 떠오르는 단어들, 교문과 병아리와 문구점 등등. 우리는 어느새 느릿느릿 그 시간과 마주하게 있습니다. 어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서부터, 닫혀버린 귀가 일순 ‘위이잉’ 열리는 것도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네요.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89 리라 손택수 리라 있지? 고대엔 리라 현을 양의 내장으로 만들었대 내장을 재로 씻어서는 갈기갈기 찢었지 하필 재였을까 잿더미였을까 멀리 독일까지 가서 고고학 공부를 하는 허수경 시인에게 들었다 왜 고국을 떠났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담담하게 시 때문이라고 했다 독하구나, 모국어를 위해 모국을 떠나다니 시인의 말을 받아적은 종이도 독을 삼킨 것이다 종이라면 제지공이었던 유홍준 시인이 생각난다 산판에서 벌목공 일을 할 때 양잿물 마시고 죽으려 길 몇 번, 양잿물 팔자가 어디 가겠노 살다보니 펄프에 양잿물을 타고 있더라 양잿물 마신 종이에 시를 쓸지 누가 알았겠노 말년엔 시 한 편이면 천하 원수도 다 용서가 될 것 같다고 안주도 없이 소주를 마시던 박영근 시인도 생각난다 수전증에 걸린 손으로 술잔을 건네던 그가 나는 꺼림칙했다 손의 발작이 옮겨오면 어쩌나 멀찌감치 떨어져 지냈다 겨울밤 덜덜덜 발작이라도 하듯 모포를 덮고 떠는 창문 옆에서 모니터를 면경처럼 들여다보고 있다 야근을 자주 하면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데, 위장병과 소화장애 환자가 되기 십상이라는데 무슨 독한 사연도 없이 쓰린 속을 움켜쥐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 야근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