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속 조용숙 오래 살아야 두 달 산다는 아버지를 노인병원에 모시던 날 보호자는 있을 곳 없으니 이제 그만 다들 돌아가라는 수간호사 말에 한순간도 엄마와 떨어져 살아본 일 없던 아버지 눈동자가 힘없이 흔들린다 하는 수 없이 엄마까지 입원수속을 밟고 돌아서는데 어머니 내 귀에 대고 살짝 속삭인다 글쎄 동네 홀아비 김씨가 한밤에 건넛마을 팔순 과부를 겁탈했다는 소문이 동사무소에 파다하단다 니 아버지 먼저 가면 나 무서워서 어떻게 산다냐 대문 없는 집에서도 평생 맘 편히 잘 살았는디 니 아버지 가면 얼마 안 있다 바로 따라가든지 아니면 제일 먼저 대문부터 해 달아야 쓰겄다 제삿날 받아놓은 아버지 곁에 새색시처럼 바싹 달라붙어 있는 칠순 엄마가 처음으로 여자로 보였다 아무리 문을 잠그고 몸을 잠그고 마음을 잠근다 해도 죽음은 찾아온다. 도둑과 같이 찾아온 죽음은 어린 아이의 몸속에 뱀처럼 꽈리를 틀고 들어앉아 이십년이고 칠십년이고 견디며 녹슨 문고리가 부서지고 노쇠한 몸이 늘어지고 쇠잔한 마음이 한없이 약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대문 없는 집이라고 세월이 비껴가진 않겠지만, 자물쇠에 의지하는 것보다야 사람에게 의지하는 편이 훨씬 든든하다는 것을 죽음도 안
- 누가 그를 조선의 국모라고 불렀나! 한국을 대표하는 창작 뮤지컬로 공전의 기록을 세운 명성황후. 극적인 죽음, 일국의 왕비가 침전에서 외국의 낭인들에게 참혹한 죽음을 당한 사실은 드라마적인 요소를 지녔다. 역사와 민족을 동일시하는 우리에게 준 충격은 가혹하다. 드라마와 뮤지컬의 성공으로 인해 고종과 명성황후를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를 실현하고자 한 인물로 복권하자는 주장이 공감을 얻기도 했다. 명성황후를 민비로 부르는 것은 우리 역사에 대한 무지의 산물이며, 일제의 잔재라고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명성황후 민자영은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 민씨의 천거로 1866년(고종 3) 두 살 아래 고종과 혼인한다. 세도정치에 민감했던 흥선군 이하응의 선택은 분명했다. 여덟 살에 부친을 잃은 중전 민씨는 인현왕후의 후손으로 뼈대 있는 가문에다 어린 시절부터 『춘추』를 읽을 정도로 총명했기 때문이다. 탁월한 간택의 중전민씨가 입궁 7년 만에 조선 최초의 살아있는 대원군을 축출하는 정치적 능력을 발휘했다. 1873년 고종의 친정은 중전 민씨가 단순한 왕비가 아니라 정치적 반려자 또는 그 이상의 정책 결정권자라는 것을 대내외에 알리는 계기였다. 을미사변이후 고종이
어린이 충치 탈출 보건소가 돕는다 용인시는 연중 어린이집, 유치원 아동을 대상으로 바른 이닦기 교육과 무료 불소 도포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충치 발생률이 높은 4~7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처인구 관내 44개소 어린이집, 유치원을 직접 찾아가 4028명에게 불소 도포를 실시한다. (문의 용인시 처인구보건소 구강보건실 031-324-4910)
도심속에서 싱그런 봄속을 달린 2013년 용인마라톤 대회에 용인시 최대 인라인 동호회소속 회원들이 참석, 자원봉사를 해 주목을 받았다. 그 주인공은 용인INP(인라인과 사람들 Inline People회장 양태석)소속 10여명의 회원. 이들은 지난 27일 수지레스피아에서 5000여명의 마라토너와 시민들이 참가해 열린 이 대회 패트롤 자격으로 한몫했다. 이 패트롤은 5㎞, 10㎞, 하프를 달리는 마라토너들과 함께 주로를 달리며 근육통증과 피로감을 호소하는 마라토너들을 현장에서 도와주는 역할이다. 이들은 가방에 각종 약품을 갖고 주로를 달리며 간호하기때문에 이동 간이 응급사다. 용인시민들과 함께 한 마라톤 대회에 마라토너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더욱이 이같이 커다란 시 행사에 우리 동호회가 조그마한 역할을 할 수있다는 것이 참 기뻤습니다 이날 이춘미(닉네임 수지)씨는 10㎞구간에 패트롤로 참가한뒤 주자들과 결승점에 도착한 소감을 피력했다. 한편 이 동호회는 지난 2008년부터 시민누구나 참여, 수지체육공원, 수지레스피아, 탄천 등에서 일주일에 2번이상 꾸준히 모임을 갖고 있다./특별취재반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31 고독한 사람 최영철 말수가 뜸한 사람은 윗입술과 아랫입술 교분이 두터운 사람이다 윗입술과 아랫입술 궁합이 딱 맞아떨어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사이를 아무나 함부로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다 정말이지 어쩔 도리가 없어 잠시라도 멀어지면 심심하고 보고 싶어서 입술이 파리해지는 사람이다 잠시 떨어져 헛바람이 둘 사이를 지나가면 금방 침이 말라 죽을지도 모를 사람이다 게으른 사람은 손발과 팔다리의 취미가 고독인 사람이다 소싯적 취미란에 아무 의심 없이 고독이라고 쓴 적이 있는 사람이다 손발과 팔다리가 제 일에 바빠 조금만 흩어져도 눈앞이 캄캄해지는 사람이다 팔다리가 한통속으로 무슨 일을 도모할까 봐 걱정이 태산인 사람이다 보고픈 이도 없고 찾아 나서거나 악수할 이도 하나 없는 사람이다 온 힘을 풀고 손과 발을 허공에 늘어뜨린 채 홀로 묵상하는 척하는 사람이다. 고독은 스스로 얻는 병이다. 생의 저울 위에 올라선 제 무게에 비해 고독은 얼마나 가벼운 것인가. 가볍게 살지 못하는 자들은 삶의 무게 때문에 한없이 가라앉을 뿐이다. 말이 많고 적음이 가볍거나 무거운 것의 기준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고독한 동물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군
한국 최초의 신부를 기억하라! 김대건을 말하다. 역사교과서에 한줄로 정리된 인물 김대건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부이다. 그런데 김대건에 대해서는 가장 불명확한 것은 그의 출신 신분이다. 워낙 비밀스럽게 종교활동을 했기 때문일까. 25년의 짧은 생을 살았기 때문일까? 그의 집안이 양반이었는지 평민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그가 추구한 것은 신분을 초월한 평등과 사랑을 구현하는 것이었으니. 1821년(순조 21) 김대건은 김제준(이냐시오)과 고(高) 우르술라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의 집안이 살던 곳은 내포 지방 솔뫼로 지금의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이다. 그의 할아버지 김진후는 천주교를 믿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814년 사망했다. 김대건의 아버지 김제준은 1839년 서울 서소문에서 참수되었다. 할아버지 김진후의 아들 중 셋째 종한은 1816년에 참수되고, 종한의 딸은 1839년에 참수당하고, 이 딸의 사위는 1824년에 옥사했다. 또 작은할아버지인 선후의 손자 제교, 할아버지 김진후의 넷째아들 희연의 아들 제항은 1866년에 공주의 충청감영에서 처형되고, 김대건의 또 다른 숙부 제철의 아들 진식은 1867
▲ 조양민 경기도의회 의원 어느 마을 한 가운데 넓은 목초지가 있다. 주민들은 소를 키우기 위해 목초지를 공동으로 사용한다.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은 소를 키우려고 욕심을 부리게 되고, 그 목초지는 황폐해진다. 이 같은 현상을 표현한 이론이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다. 1968년 하딘(G. J. Hardin)이 창시한 이 이론은 개인과 공공의 이익이 충돌할 때, 개인의 이익을 통제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자신을 포함해서 공동체전체가 피해를 입게 된다는 교훈과 국가가 경제주체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면서도 개입통제하는 정책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다. 요즘 화두로 떠오른 경제민주화는 헌법 119조 2항에서 유래한다. 1항은 대한민국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하며 자유시장경제원칙을 표방하고 있다. 반면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 성장과 적정한 소득 분배,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국가가 개입할 여지를 둔 것이다. 2항에 따라 최근 대기업으로 쏠
자전 김해준 인형의 가죽을 벗겨 솜을 빼낸다. 사시였던 눈알이 평지에 닿아서야 곧추떠진다. 색 바랜 겨울은 뒤꼍에 쌓여간다. 실밥 뜯는 소리에 빛이 물러간다. 중국인 어머니는 피혁을 벗기던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렵에 누운 아이가 우울을 배우며 한 끔씩 자란다. 등 안에서 죽은 나방의 그림자가 바람을 끌고 창문턱에 어른거린다. 묻혀있던 모든 사물의 살갗에서 각질이 벗겨진다. 육신이 눕고 그림자가 일어서는 야음이다. 입술을 깨물며 뼈로 껴안은 가슴은 메말랐다. 눈 속에 갇힌 물방울만한 초점에 맺혀 풍경을 삭힌다. 눈썹 점이 애벌레의 심장으로 두근거린다. 눈물이 이불에 스며들어 가볍게 난다. ---------------------------- 기시감, 우리의 불행은 모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당신의 과거 혹은 미래. 나와는 상관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나로부터 비롯된 결과다. 너와 함께 만든 비극이다. 언더그라운드, 그 모든 가난과 비극과 처참은 이제 우리가 살아내야 한다. 전쟁은 밖에서 일어나고 우리는 안에서부터 무너진다.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
벌써 2013년의 4월도 중반을 지나고 있다. 언제쯤 새싹이 돋아날지 기미가 보이지 않던 주변에도 하나둘씩 작고 여린 초록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세상은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늘 그렇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또 다음을 위해 준비한다. 겉으로 보기엔 이 모든 일들이 그냥 저절로 이루어지는 듯 보이지만 차가운 땅속에서 그 여린 것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 추위와 목마름과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무관심 속에서 고군분투 했으리라. 우리가 5년 혹은 4년, 선거 때마다 한 표씩 행사할 권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럽고 바닥에 땅을 딛고 걷는 것만큼 익숙하다. 노력하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권리이다 보니 행사하지 않고 버려지기도 쉽다. 어느 날 부턴가 우린 선거가 가진 본래의 의미를 잊은 채 선거라는 행위나 정치적 상징성에 더 집중하고 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갖는 당연한 권리들이 있다.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아도 인간으로써 당연히 가지는 권리인 생명권, 평등권, 자유권 등이 그 것이다. 그러나 선거를 행사할 수 있는 참정권은 법에 세부절차가 규정되어 있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권리다. 더욱이 선거는 투쟁 혹은 타협의 역사 속에서 일련의
오룡의 역사 타파(26) 고려- 몽골과 30년을 맞장뜨다, 그 중심에는 처인성의 김윤후가 있었다 태종 4년 8월, 다시 살리타이를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고려를 정벌케 청했는데, 왕경 남쪽에 이르러 처인성을 공격하던 중 유시(流矢)에 맞아 죽었다 [원사]몽고의 원수 살리타이가 성을 공격하자 김윤후가 이를 사살하였다. [고려사] 1232년 12월 16일, 질풍노도처럼 내달리던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이가 죽었다. 30여년간 대 몽골전쟁 최대의 승전은 고려의 정규군이 아닌 이름없는 부곡민과 승려 김윤후가 만들었다. 몽골군의 제 2차 침략이 벌어질 당시, 대칸 오고타이는 금나라 정복에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살리타이는 아마 고려의 북방이나 그곳에서 멀지 않은 요동 지역에 주둔하고 있다가 출병했던 것이 아닐까? 만약 그가 금나라 정복에 참전하고 있었다면 지리적인 위치상 고려에 대한 원정을 다시 개시하기는 어려웠을테니 말이다. 2차 침략은 고려의 주요 거점에 대한 공격을 감했했다. 1차 침략이 충주와 청주였음을 감안하면. 대구까지 내려온 몽골군은 팔공산 부인사에 소장된 대장경판을 불태워 버린다. 팔공산에는 공산성이 있는데, 몽골군은 아마 이 공산성을 공격하면서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이 공동주최하고, (주)다음커뮤니케이션이 후원하는 제5회정부학자금지원 및 대학생 지식멘토링 수기공모전이 4월1일부터 4월14일까지 개최된다. 응모대상자는 2012년, 2013년 장학금수혜자 학자금대출이용자 또는 2012년도 지식멘토링참여대학생이다. 주제는 꿈과희망,그리고 미래이며 정부지원국가장학금과 학자금대출을 통해 스스로 자기의 미래를 설계하고 개척한 노력 및 성공사례가 담겨있는 내용으로 A4용지 3장 이내 분량으로 작성해서 오는 14일까지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www.kosaf.go.kr)에 접수하면 된다. 정부학자금 지원부문에서 최우수상 300만원(1명), 우수상 200만원(3명), 장려상 100만원(5명)의 장학금이 지급되며, 지식멘토링부문에서 최우수상 50만원(1명), 우수상 30만원(2명), 장려상 20만원(3명)의 장학금이 지급된다. 당선자는 5월 1일 수요일에 발표되며 시상식은 5월7일 개최될 예정이다. 문의(한국장학재단수기공모전담당자:02-2259-2351) 양경이 알통기자 onroadsto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