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잎 류시화 그리고는 하루가 얼마나 길고 덧없는지를 느끼지 않아도 좋을 그 다음 날이 왔고 그 날은 오래 잊혀지지 않았다 붉은 잎, 붉은 잎, 하늘에 떠가는 붉은 잎들 모든 흐름이 나와 더불어 움직여 가고 또 갑자기 멈춘다 여기 이 구름들과 끝이 없는 넓은 강물들 어떤 섬세하고 불타는 삶을 나는 가지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졌었다, 그렇다, 다만 그것들은 얼마나 하찮았던가, 여기 이 붉은 잎, 붉은 잎들 허공에 떠 가는 더 많은 붉은 잎들 바람도 자고 물도 맑은 날에 나의 외로움이 구름들을 끌어당기는 곳 그것들은 멀리 있다, 더 멀리에 그리고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이 그것들을 겨울하늘 위에 소용돌이치게 하고 순식간에 차가운 얼음 위로 끌어내린다 그의 본명은 안재찬,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그는 분명 나무의 후생(後生). 움직일 수 없어 붉은 잎을 대신 강물에 흘려보내는 뿌리의 밀사. 잎이 흐르고 흘러 더 이상 흐를 수 없는 곳에 닿았다면 그곳이 서방일 터. 붉은 잎들이 절집 마당을 찾아와 밤새 떠돌다 이른 새벽 흔적도 없이 쓸려나갔나 싶더니만, 저를 버린 나무 밑에 깃들어 조용히 얼어붙는다. 생이든 죽
病書 박해람 약봉지를 접어 내게 보낸 편지에 그대의 병력(病歷)이 붙어 있다 심신에 색(色)이 들어 그늘에도 못 들고 있다고 쓰여진 문장은 기침이 심하다 만추에 앉아서 받는 病書라니 우울한 그늘 한 자락은 도무지 잎을 떨굴 줄 모르니 그 그늘에도 차가운 얼음이 얼 것이네 여기 잠깐 그대의 필체를 들려줄라치면 국진의 그늘에도 서리가 내리는 요즘 무탈하신가. 나는 여름 내내 풀지게를 지고 휘청거렸다네. 내 거처에는 온통 약봉지뿐이니 이렇듯 오후에 그것도 자네가 좋아하는 석양의 한 때를 빌려 보내는 友書에도 약봉지를 쓰는 것을 이해해주시게. 나는 내 몸이 전생에 온갖 약을 싸던 봉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네. 허연 김으로 한 때의 독을 다 빼낸 물렁한 약을 싸던 약봉지. 무릇, 세상에서 덮던 이불이 수의(壽衣)가 되는 것 아닌가. 모든 색이 다 흙 속으로 돌아가듯 나도 내 거처쯤 궁금하여 오늘은 이제 돌아가도 되냐고 빈 묵정밭에게 물어보고 온 참이네. 흰 색은 세상의 독이니 내 몸에도 간간이 새치가 빠져 나온다네 장자(壯子)의 젊은 손끝을 빌려 보낸 그대의 병서는 뒤끝에 단 것이 필요한 문장이어서 한 번에 들이키지 못하고 읽었다네. 세상의 모든 귀퉁이들을
황로 정우영 독도 사는 황로의 배를 가르자 물고기가 아니라 작은 새들이 오밀조밀 뱃속에 숨어 있었다. 황로가 콕콕 찍어 삼키기도 전에 작은 새들은 스스로 원해서 황로의 부리를 밀고 쏙쏙 뛰어들었다 했다. 적당히 삭은 작은 새들은 새근새근 단숨을 내쉬면서 뱃속이 참 나른하다고 말했다. 내가 다시 조심스레 황로의 배를 꿰매자 황로는 트림하듯 부리를 벌렸고 나는 냅다 부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제 그만 세상과의 소통은 접고 나도 어딘가 나른한 곳에 숨어서 적당히 삭아지고 싶은 것이다. 벼랑 위 둥지 속 어린 새들에게 어미의 입은 생명줄 그 자체. 새끼들은 어미가 목구멍을 벌려 토해 놓은 먹이를 먹고 자란다. 본능적으로 어미 입 속에 제 머리를 들이밀던 어린 새들은 어미가 아닌 다른 새가 날아와 입을 벌려도 머리를 들이민다. 먹이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몸을 먹이로 삼기 위해서 벌린 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생사 구별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이다. 어찌 새들만 벼랑 위에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아파트 역시 위태로운 벼랑에 다름 아니다. 어린 새들처럼, 우리도 매일 매일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만 모른다. 박후기 시인 hoogi
부담 김승일 동생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도 양아치였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깨달아버린 것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양아치보다는 학교에 가는 양아치가 더 멋있다는 사실을, 부모가 죽고 세 달이 흐르자, 숙제가 밀리면 그 숙제는 하지 않는다. 그것이 형의 방식. 형이라서 라면을 먹어, 역기도 들고, 찬송하고, 낮잠을 때리지. 형이라서, 형이라서 배탈이 났어요. 나는 학교에 늦게 간다. 하고 싶다면 너도 형을 해. 그러나 네가 형을 해도. 네가 죽으면 내 책임이지. 학교에서, 나는 농구하는 애. 담배 피는 애. 의자로 후배를 때린 선배. 아버지가 엄마보다 늦게 죽을 줄 알았어. 자주 앓는 사랑이 오래 사는 법이니까. 부모가 동시에 죽고, 이제 누가 화장실 청소를 하나? 형이라서 배탈이 났어요. 이십 분 간격으로 물똥을 눈다. 창피하게. 동생이 옆에서 샤워를 한다. 구석구석. 친구들이 모두 집에 돌아간 뒤에도 나는 학교에 남아 침을 뱉는다. 구령대에서, 나는 침을 멀리 뱉는 애. 부모가 죽고 세 달이 흐르자. 부모가 죽고 네 달이 흐른다. 그리고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동생이 뛰어온다. 변기에서 쥐가 튀어나왔어. 괜찮아. 내일부터 학교에 오자. 똥은
북 한우진 아버지는 북이다 한 번도 북을 두드려 보지 못하고 북을 향해 누웠다 나는 생전의 아버지 앞에서 한 번도 북을 위로 놓고 지도를 펴보지 않았다 북을 발밑에 깔고 남으로 서울을 지나 괴산, 충주를 손톱으로 눌렀다 피 묻히고 얼룩진 자리가 고향이 아닌가요, 나는 우기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북을 따듯한 남쪽으로 그리워했다 형편없는 마당이었지만 목련은 피었다 목련은 남을 등지고 북으로만 꽃을 피웠다 아직 맺히지도 못한 나는 아버지 등을 돌려 보세요, 이쪽이 따뜻한걸요, 남풍이 불어도 아버지는 북을 향해 단추를 풀었다 북창이 많은 집일수록 아버지는 값을 높게 쳐주었다 내가 북리(北里)에 편지를 써대기 시작할 무렵 북관에서 새들이 날아올랐다 그것 보렴, 두드릴 수 있다니깐 그러나 새들은 얼음덩어리로 북적거렸다 아버지는 누가 두드려 주지 않는 북처럼 윗목에 놓여졌다 아직도 아버지는 북이다 어김없이 올해도 나는 북을 향해 아들과 함께 절을 하였다 아버지 북 받으세요, 북(北)과 북(鼓), 동음이의(同音異議)가 한 뜻으로 읽힌다. 이것은 반복의 결과. 반복과 주입을 거듭하다보면 혼돈이 찾아오고 혼돈 이후엔 수긍과 체념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북(北)이란 말이 어느
정로환 윤성학 가실 때, 정로환 한 병을 가방에 넣어드렸다 멀리서 손주딸 살림을 들여다보러 온 처할머니가 선 채로 똥을 지렸다 다리를 타고 내린 덩어리 하나가 바닥에 멈추어섰다 아내는 얼른 달려가 휴지로 그걸 훔쳐내었다 바지를 벗기고 노구를 씻겼다 딸아야, 아래를 잘 조이고 살아야 여자다 고개 돌려 모른 척하던 손주사위가 고개를 끄덕인다 끄덕인다 구멍이 헐거워 밑살이 아물지 않아 내 속이 늘 가지런하지 못했다 때론 분노를 때론 눈물을 몸에서 놓치곤 했다 늙는다는 건 구멍이 느슨해진다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더 늙어야 나의 구멍들을 다스릴 수 있을 건가 가실 때, 정로환 다섯 알을 내가 먼저 꺼내 먹고 가방에 넣어드렸다 추석도 지나고, 이젠 널린 그릇이며 술김에 쏟아진 감정들을 제 자리에 갖다 놓을 때다. 다 먹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누구에게 싸주지도 못해 그만 상해버린 음식처럼, 우리의 부모들도 혼자 남겨져 가을 장마에 몸과 마음이 상해가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선 채로 똥을 지리며 아래를 잘 조이고 살아야 여자라고 말하는 처할머니 곁에서 윤성학 시인은 때론 분노를 때론 눈물을 몸에서 놓치곤 했던 자신의 구멍을 반성한다. 구멍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
용산을 추억함 박소란 폐수종의 애인을 사랑했네, 중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용산우체국까지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한강로 거리를 쿨럭이며 걸었네 재개발지구 언저리 함부로 사생된 먼지처럼 풀풀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도시의 몸 구석구석에선 고질의 수포음이 새어나왔네 엑스선이 짙게 드리워진 마천루 사이 위태롭게 선 담벼락들은 저마다 붉은 객담을 쏟아내고 그 아래 무거운 날개를 들썩이던 익명의 새들은 남김없이 철거되었네 핏기 없는 몇 그루 은행나무만이 간신히 버텨 서 있었네 지난 계절 채 여물지 못한 은행알들이 대진여관 냉골에 앉아 깔깔거리던 우리의 얼굴들이 보도블록 위로 황망히 으깨어져갔네 빈 거리를 머리에 이고 잠든 밤이면 자주 가위에 눌렸네 홀로 남겨진 애인이 흉만(胸滿)의 몸을 이끌고 남일당 망루에 올라 오, 기어이 날개를 빼앗긴 한 마리 새처럼 지옥불 일렁이는 아스팔트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쳐가는 불온의 미몽이 사이렌처럼 머릿속을 낭자하게 물들였네 상복을 입은 먹구름 떼가 순식간에 몰려들었네 깨진 유리창 너머 파편 같은 눈발이 점점이 가슴팍에 박혀왔네 한숨으로 피워낸 시간 앞에 제를 올리듯 길고 긴 편지를 썼으나 아무도 돌아올 줄 모르고 봄은 답장이 없었네 영영 애인을
김량천의 안개 | 김종경 안개처럼 떠다니던 삶이 가벼워 그들은 항상 술을 퍼마셨고, 가끔은 안개가 범람하는 김량천에 몸을 던졌다 안개를 몰고 다니던 신작로 가로등도 허기를 태워 불을 켜고 있는지 포장마차에서는 누구나 안개를 그냥 술처럼 마신다 흔들리는 불빛에 만취한 노래는 안개가 쌓인 둑방을 넘지 못해 김량천 너른 변에 서서 오줌을 갈긴다 일렬횡대로 웅크린 포장마차 불빛들은 안개의 생살을 찢고 나와 꽃상여처럼 두둥실 이따금 구겨진 담배꽁초들이 술 취한 언어와 함께 안개 속에 버려지고 그중 몇 놈은 욕설과 멱살잡이를 또 다른 몇 놈은 집어등(集魚燈) 같은 불빛을 따라 김량천 안개에 속살까지 흠뻑 적셨다. 이제 가을, 김량천에 곧 안개 시즌이 시작될 것이다. 안개는 사물을 가리지만, 그 속에 들어가 본 사람은 안개 때문에 제 마음 속을 들여다보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눈을 가리면 마음으로 보게 되는 이치가 바로 그런 것. 용인 토박이 김종경 시인은 안개를 그냥 술처럼 마신다. 김승옥은 소설 「무진기행」에서 무진의 특산물이 안개라고 했지, 아마도. 높은 교각 위로 으스대며 달리는 경전철보다 낮은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김량천의 안개가 훨씬 더 인간적이지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 홍성 사람 이정록 시인은 참, 구수하다. 겉모습과 입담은 하도 구수해서 술자리에서 옆에 앉으면, 자리 뺏길까봐 화장실 가기가 싫을 정도다. 속마음이야 꼭 들여다봐야 아나. 보령 진흙 머드팩처럼 미세한 슬픔이 그의 가슴 언저리에 가라앉아 있을 것이란 걸 선수들은 금방 알 수 있다. 얼근하게 잔이 한 순 돌면 드디어 그가 일어난다. 허리띠를 빼들고 변사가 되어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목 놓아 부르는 것이다. 그의 시가 점점 짧아진다. 그만큼 깊어졌다는 얘기. 사는 게 별 거냐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 시인의 어머니 말씀이 시다. 내일은 의자가 되어볼 셈이다. 의자가 별 건가. 마음 엎드려 따뜻한 등 대주면 그 게 의자지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 하지 않았다 십 수 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2003년, 대추리 논바닥에서 처음 송경동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껏 필자는 그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사소하고 낡
얼룩에 대하여 장석남 못 보던 얼룩이다 한 사람의 생은 이렇게 쏟아져 얼룩을 만드는 거다 빙판 언덕길에 연탄을 배달하는 노인 팽이를 치며 코를 훔쳐대는 아이의 소매에 거룩을 느낄 때 수줍고 수줍은 저녁 빛 한 자락씩 끌고 집으로 갈 때 千手千眼의 노을 든 구름장들 장엄하다 내 생을 쏟아서 몇 푼의 돈을 모으고 몇 다발의 사랑을 하고 새끼와 사랑과 꿈과 죄를 두고 적막에 스밀 때 얼룩이 남지 않도록 맑게 울어 얼굴에 얼룩을 만드는 이 없도록 맑게 노래를 부르다 가야 하리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돈과 사랑, 명예 같은 것들이 나의 전부는 아닐 것인데, 아니,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정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가? 나이 마흔 살을 넘기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 몇 푼의 돈을 모으고 몇 다발의 사랑에 몰입하느라 지쳐 어느새 얼굴에도 얼룩이 질 나이. 누구에게나 마흔 살은 오느니 새끼와 사랑과 꿈과 죄를 앞에 두고 얼룩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마는, 그래도 얼굴에 얼룩 만드는 일 없이 맑게 노래를 부르다 갈 일이다.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
연애질 이덕규 북조선에선 남녀가 사귀는 걸 두고 연애질이라고 한다는데, 연애질! 그 질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게 보여 삽질 가래질 쟁기질 써래질 호미질 낫질로 일구어낸 만 평 푸른 보리밭 물결이 보이고 휘영청 달빛 젖은 이랑 사이로 밤새 축축하게 걸어놓은 물방아 소리 들려오는데 누가 거기 대고 손가락질을 하겠어 뭔가 질퍽대고 싶은 게 사랑인데 흘끔흘끔 곁눈질만 하다가 깔짝깔짝 입질만 하다가 돌아서는 당신 어디 이걸 낚시질이라 할 수 있겠어 핏대 세우고 삿대질만 해대는 당신들 쌈질은 발길질 주먹질로 걸어야지 연장 있으면 뭐해 연장질을 해야지 애정 전선에 균열이 생기면 즉시 구멍 난 냄비나 솥단지 때우듯 물 샐 틈 없이 온몸으로 땜질을 해야지 열흘 굶고도 도적질할까 말까 망설이는 당신 말이야 그 우라질 마음만 있으면 뭐하냐구, 몸이 떠나는데 그걸 뭣에다 쓰냐구 젠장! 삽질, 낫질, 낚시질, 손가락질, 연장질, 땜질. 접미사 ~질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삶 그 자체이다. 여러 가지 ~질 중에서 연애질만큼 흥미롭고 가슴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마음은 이미 보리밭에 가 있는데, 결국 입질만 하다가 돌아서야 하는 심정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