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할까 문효치 바람 불 때마다 내 가슴 속에 날아와 쌓이는 꽃잎들을 어이할까 몸서리치는 저 향과 빛깔 그립다가 아픔이 되는 꽃잎들을 어이할까 문효치는 1966년, 서울신문과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되면서 화려하게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무령왕의 나무새』 외에 30여 권의 작품집을 가지고 있다. 손현숙은 그의 시세계를 ‘무늬에 대한 해석이다. 무늬는 밤하늘의 별, 단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의 시편들은 죽음과 마주 서는 자리에 세워진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해석,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경외다. 밤의 시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낮의 시간도 읽어내지 못하는 법. 그는 죽음을 초월하는 그 자리에서 지금 이 시간의 무늬들을 들여다본다. 그것은 하늘의 시간표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그의 눈빛은 단호하다. 홀로 수직하며 오랜 격절을 겪어냈던 사람의 내면은 저렇듯 고요한 것이어서, 시선은 언제나 먼 곳을 향해 간다.’고 짚어냈다. 그는 사물에 대한 외경을 가지고 있어 작고 하찮은 것들도 그의 시 속에서는 영롱하게 빛난다. 그의 사물에 대한 외경은 유년의 아픈 기억들과 관계가 있다. 그는 몰락한 지주의 손자였고 월북자의 아들이어서 늘 왕따고 외톨이였다. 홀로 꽃과
국밥 이재무 매번 고인께는 면목 없고 죄스러운 말이지만 장례식장에서 먹는 국밥이 제일 맛이 좋더라 시뻘건 국물에 만 밥을 허겁지겁 먹다가 괜스레 면구스러워 슬쩍 고인의 영정 사진을 훔쳐보면 고인은 너그럽고 인자하게 웃고 있더라 마지막으로 베푸는 국밥이니 넉넉하게 먹고 가라 한쪽 눈을 찡긋, 하더라 늦은 밤 국밥 한 그릇 비우고 식장을 나서면 고인은 벌써 별빛으로 떠서 밤길 어둠을 살갑게 쓸어주더라 이재무는 1983년『삶의 문학』으로 문단에 나왔다. 『섣달 그믐날』 외 다수의 시집을 냈다. 그는 삶의 문제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인간의 무한한 생명력을 예찬하는 시세계를 보여왔다. 이번 시집 『데스밸리에서 죽다』 역시 그의 이와 같은 시세계를 깊이 있게 보여준다. 특기 할 것은 연륜에서 오는 생의 관조와 깨달음의 시편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국밥」은 장례식장의 풍경을 수식 없이 진솔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림으로 치면 가벼운 텃치의 그림인데 결코 가볍지 않다. 삶과 죽음의 극명한 대비에서 오는 무게일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먹는 국밥이 제일 맛있는 이유는 산 자의 살아 있음의 기쁨 때문일 것이다. 죽은 자 앞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것 같은, 기실 죽은
몽유강천보기 김인자 불안을 내려놓자 낮은 신음소리 달려가던 강은 물비린내로 깊어지고 말았습니다 깊다는 건 넓이를 어둠 속에 담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높고 깊고 소스라치게 그윽한, 그럴지라도 생각과 몸이 기우는 곳은 여전히 당신입니다 풀잎을 흔들던 바람은 기어이 가을을 문 앞에 세우고야 말았습니다 구름 사이로 귀소하던 두루미 떼의 유연한 비상을 보았던가요 눈 앞에 강은 그대로인데 몽유라면 이 같은 그림을 눈앞에 전개한 자연과 살아 있음을 감사로 전언하는 당신이야말로 전 생애를 통틀어 가장 황홀한 몽유지요 산그늘이 깊어지네요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뿐 10년이 어제 같은데 가을장미는 이미 건너가고 없는 로맨스라 했던가요 잠에서 깨어 아랫도리를 흥건하게 적시던 그날 아침은 한 번도 입맞춤 해보지 못한 당신의 향기가 나의 꽃밭에 흘러 넘쳤습니다 그 향기 때문에 나는 오래 어지러웠고 뻔한 길을 헤매야 했지요 향기를 따라가다 보니 꽃밭에서 멀어지거나 터무니없이 가까워지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고요 칼날 같은 통증이 가슴을 스칠 때마다 꽃들은 불꽃처럼 솟구쳤고 홀로 그 넓은 꽃밭을 지키는 일은 형벌 같았습니다 다시 밤이 오고 아침이 와도 그 꽃밭에 남은 당신의 향기는 여전했
봉양 황인찬 친구의 과수원에 놀러 갔다 과수원에서는 벌을 많이 친다고 했다 빛 많은 날에는 벌들 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고 꽃나무가 늘어서 있고 친구는 벌들과 같이 바쁘다 다른 세상 같아 무심코 나온 말에 친구는 말이 없다 과수원을 한바퀴 돌았다 사과꽃에 벌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왱왱대며 움직이며 빛 소음 운동 빛 모두 부수고 있었다 황인찬은 2010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나왔다. 시의 특징은 시니시즘이다. 세상 모든 사물을 뜻 없이 본다. 그리고 냉소 한다. 이런 특징은 그의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에서 분명해진다. 그의 시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김현 시인의 말처럼 차가운 정념으로 빚어낸 시이고, 슬픔도 놀라움도 없는 시이고, 죽음을 선험하게 하는 시이고, 어디에도 나온 적이 없는 시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펴낸 『사랑을 위한 되풀이』도 다르지 않다. 그는 어떤 인터뷰에서 ‘메시지를 던지는 건 의미가 없어요. 아주 일시적이고, 심지어는 내가 무슨 메시지를 갖고 있었는지 나도 잘 몰라요. 그런 건 다 착각이에요.’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없다. 그가 말한 것이 전부다. 독자는 느끼면 된다. 의미를
국립도서관의 영원한 밤 신해욱 내 자리에서. 더할 나위 없는 내 자리에서. 너는 죽은 책을 읽고 있다 커튼이 부풀고 있다. 사물이 펼쳐지고 있다. 죽은 까마귀. 죽은 불가사리. 죽은 가자미. 죽은 노래의 메들리가 들려오고 있다. 원을 그리면서. 반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면서. 나는 나의 동정을 살피고 있다. 두 개의 귀. 열 개의 손톱.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나쁜 버릇. 너는 죽은 농담의 뼈를 모으고 있다. 죽은 생각의 무덤을 파헤치고 있다. 죽은 단어를 모아둔 필통을 뒤적이고 있다. 죽은 가자미의 눈동자가 너를 노려보고 있다. 수분 과다로 죽은 선인장에 나는 규칙적으로 물을 주고 있다. 화장실을 참고 있다. 발소리를 죽이고 있다. 원을 그리면서. 점점 더 완전한 원을 그리면서. 죽은 속담을 외우고 있다. 죽은 시계. 죽은 가마우지. 죽은 불가사리. 딱딱한 것이 만져지고 있다. 나는 웃고 있다. 내 자리에서. 더할 나위 없는 내 자리에서. 신해욱은 1998년『세계일보』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그녀의 시는 정제된 언어와 견고한 형식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첫 시집 『생물성』은 인칭 없는 고백과 시제를 넘나드는 아이러니를 보였다. 그후 근원이라 할만한 것으
레파도미솔 김승일 검지를 접었다 펴고 약지를 접었다 펴고 엄지를 접었다 펴고 중지를 접었다 펴고 새끼를 접었다 폈다 오각별을 상상하면서 오각별이 사라지면서 다시 그리고 오각별이 사라져서 다시 그렸다 오각별을 그린 그날부터다 뒤집힌 오각별은 염소의 머리와 시 나는 가끔 그렇게도 그렸는데 솔미도파레 그게 그런 뜻인 줄은 몰랐다 레파도미솔 김승일은 2009년『현대문학』신인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2012년에 상자한『에듀케에선』이후 7년만이다. 문지시집 표사는 대개 시인 자신의 글이다. 김승일은 표사에서 ‘.....이 책은 완벽하다는 말 외는 표현할 수 없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작품이며, 정말로 감동적이다. 완벽한 작은 보석과 같은 작품. 아름답다.’고 쓰고 있다. 정말 더 많은 독자들이 읽어야 할 놀라운 작품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패기가 놀랍다. 자신감인지 역설인지 혹은 나르시시즘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암튼 재미있다. 그의 이번 시집이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다. 성별, 연령, 국적, 거주 행성 등 다양한 화자들이 등장해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시가 재미있다. 그런가 하면 기계를 시적 화자로 등장시켜 기계들의 규칙이 어떤 알레고리를 만들어 내는지 지켜보는
쾰른성당-곡두8 김민정 우리 둘의 이름으로 초를 사서 우리 둘의 이름으로 초를 켜고 우리 둘을 모두 속에 섞어놨어. 모두가 우리를 몰라. 신은 우리를 알까. 우리 둘은 우리 둘을 알까. 모두가 우리가 우리인줄 알겠지. 우리 둘도 우리가 우리 둘인 줄만 알겠지. 양심껏 2유로만 넣었어. 김민정은 1999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아름답고 쓸모 없기를』등의 시집을 펴냈다. 그녀는 최고의 편집인으로 평가 받는다. <문학동네>의 시집은 거의 그녀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문학동네> 자회사인 <난다>의 대표다. <난다>의 책들도 그녀의 작품이다. 도발적인 이름의 이번 시집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그녀 가까이 있던 문인들의 죽음을 보면서 죽음으로 드는 문은 작은데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의 문은 넓다는 의미고, 죽음으로 우리들이 헤어지는 중이라는 뜻이다. 그 의미를 알고 나면 다소 에로틱하게 읽혔던 시집 제목이 엄청난 무게로 다가온다. 그녀가 왜 곡두라는 부제를 붙였을까. 곡두는 눈
곧, 봄 김길녀 뜻밖에 눈을 만난 삼월 언저리 기차는 강원도로 가고 있다 펄펄 내리는 시린 햇살 속 - 삼월에 웬 눈이람 나한정역과 홍정역 사이에서 풍경들이 덜컹거리자 건너편 여자가 흰 지팡이를 꼭 쥐었다 여자의 눈이 된지 오래인 듯 흰 지팡이는 닳아 있었다 여자는 귀로 무언가를 보는 듯 창밖으로 오랫동안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가끔 여자의 미간이 섬세하게 흔들렸다 두 눈 뜨고도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 여자의 볼우물에 피어나는 복사꽃 꽃잎, 꽃잎 기차는 비로소 고개를 넘는다 김길녀는 1990년 『시와 비평』으로 문단에 나왔다. 그녀의 시세계를 받치고 있는 이미지는 몸과 바다라고 구모룡은 말한다. 맞는 말이다.「곧, 봄」역시 몸의 이미지와 바다의 이미지가 시를 끌고 간다. 나한정역과 홍정역 사이를 달리는 기차는 강원도로 가고 있다. 삼월 언저리라고 했으니 아직은 삼월인 것이다. 때 아닌 눈발이 내리고 있는 바깥 풍경을 보고 있던 시적화자는‘삼월에 웬 눈’이냐고 혼잣소리를 한다. 기차는 강원도에 들어 필경은 푸른 동해를 보게 될 것이다. 강원도라는 말, 나한정역이라는 말, 홍정역이라는 말 속에 이미 바다의 이미지는 살아있다. 기차가 덜컹거리자‘건너편의 여자가 지팡
howling 이설빈 너는 울다가울다가 울다가 나에 이르러 목을 축이고 길을 물었다 나라는 작은 물고기 입안에 머금고 너는 사막을 건너야 하네 너는 걷다가걷다가 갇다가 목을 축이고 너에 이르러 길을 물었다 이설빈은 2014년 『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그녀의 시는 우화적인 전개를 중심축으로 한다. 그녀의 우화형식은 세계를 우화로 만드는 작시와 스스로의 삶을 우화로 만드는 작시와 내면의 풍경을 우화로 만드는 작시가 있다. 그녀의 불안의 기울기는 내면을 우화로 만드는 시에서 더 크게 발생한다. 「howling」 역시 그녀의 내면의 불안한 풍경이다. 우는 행위와 길을 묻는 행위는 불안의 징조거나 불안의 은폐다. 울며 내게 이르는 너는 목을 축이고 길을 물었지만 걷고 또 걷다가 목을 축이고 너에게 이른 너는 길을 묻었다. 길을 잃은 것이다. 깊은 불안이다. 이탤릭체의‘나라는 작은 물고기/입안에 머금고/너는 사막을 건너야 하네’는 길을 물어보는 행위와 길을 묻는 행위 양쪽에 걸리는 불안의 징후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나와 너는 동격이기도하고 동일 인물로 읽힌다. 사막을 건너야 하는 나는 작은 물고기고 네가 입에 머금고 가야하는 운명이다. 스스로를 지고 건너
외국 여행 이영주 각자의 말들로 서로를 물들일 수 있을까 나는 그의 어둠과 다른 색 오래전 이동해 온 고통이 여기 와서 쉬고 있다 어떤 불행도 가끔은 쉬었다 간다 옆에 앉는다 노인이 지팡이를 내려놓고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 흰 이를 드러내며 나는 웃고 우리의 혼혈은 어떤 언어일지 생각한다 이영주는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했다. 지난 20년 동안 그녀의 발화는 크게 요동치지 않았다. 세상을 읽는 패라다임의 깊이가 깊어지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한다. 그녀의 시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이야기들은 변주되기도 하고 핵심을 이루기도 하며 서로 교호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원형질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그녀의 이야기인 것이다. 「외국 여행」역시 그녀의 이야기다. 어느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는 지금 수많은 외국인 여행자들 사이에 끼여 있다. 그녀가 여행자인 것이다. 다양한 인종의 다양한 언어로 서로를 물들일 수는 없다. 언어가 달라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는 그와는 다른 어둠과 다른 색’에 이르면‘그’라는 대명사의 인물이 궁금해진다. 그는 고국에 두고 온 그일 수도 있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옆의 노인일 수도 있다.
불미 윤의섭 병실 창문에 비친 목련은 아름다웠으나 아름답지 않았다 눈을 떠 보니 옆 병상은 홀연 비어 있었고 며칠 뒤 때늦은 목련 한 송이가 수줍게 피어났다 머리맡에 놓인 묵주에서 그럴 리 없는 생향이 흘러나오고 멀리 언덕 오르는 노인의 엷은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 나는 지극해진 것이다 벤치에 앉아 병동을 그리는 소녀의 풍경화에는 꽃 없는 꽃줄기가 창문에 머리를 대고 서 있다 전위의 날들이 이어졌다 윤의섭은 1994년,『문학과 사회』로 등단했다. 그는 등단 이후 계속해서 죽음의 문제를 천착해왔다. 마치 바로크문학의 전위를 보는 듯 했다. 시인에게 전위라는 말은 축복의 언어다. 전위라는 말 속에는 기존의 미학적 질서를 파괴한다는 의미가 내포되기 때문이다. 오늘 읽는 윤의섭의 시 「불미」또한 그의 시적 지향을 엿보게 하는 제목이다. 불미는 우선 몇 가지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아름답지 않다’는 의미와‘불전에 올리는 쌀’이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의섭의 불미는 이러한 사전적인 의미를 뛰어 넘는 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끝이 아니다’라는 의미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이 시는 죽음을 노래한 시가 분명하지만 죽음이 단순한 생명의 소멸을 의미하
산벚나무 박경희 법당 언저리 잎 진 산벚나무로 서 있는 내게 주지 스님이 삭발하자, 말씀하시고는 길 따라 내려가신 지 여러달 캄캄이다 달도 차서 참나무 숲으로 기운 게 여러번 눈길 밟아 마음도 득달같이 속세로 달아나버렸다가 미끄러져 돌아오는 날이 돌마당 갈잎으로 뒹굴었다 긴 머리 질끈 묶고 모과나무 그늘에 서서 산 아래 읍내 그림자만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놓고 온 것들에 대한 서글픔이 눈앞을 가리는데 어질어질 산벚꽃 핀 자리로 돌아오신 스님 내 눈을 깊이깊이 들여다보고는 오늘은 안되겠다, 하시며 바랑에 내 설움까지 넣고 또 휘청휘청 고갯길 넘어가셨다 박경희는 2001년 『시안』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첫시집 『벚꽃 문신』은 농촌의 삶속에서 신화적 요소가 작용한다는 점에서 이번 시집과 차별화 된다. 뒤숭숭한 꿈자리와 화재, 구렁이의 죽음 후에 저수지 둑의 무너짐 등이 일상생활에서의 신화적 재현이다. 첫시집이 나오기까지 15년이 걸린 것에 비해 이 번 시집은 3년 만이니 그녀의 작업이 궤도에 올라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녀의 시에는 해학과 골계가 있어 유쾌한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가족사를 고백하기도 하도 자신의 이야기를 독백처럼 풀어내기도 한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