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불과 9년 나이차로 가끔 스승을 깜 보는 듯 하는 사내는 자로(子路)뿐이다. 그런 자로를 향해 공자는 말한다. “너는 혹여 껄렁 껄렁하고, 유행을 타는 복장을 하고, 깃털도 꽂고 다니는 행색이 아무래도 나밖에 너를 야단칠 사람이 없구나.”라며, 자로의 몹쓸 버릇을 고쳐주곤 했다. 이럴 때마다 자로는 또 스승의 말을 듣곤 한다. 그럼에도 그의 행실은 절대로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사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안회가 되려 자로를 꾸짖음에 보를 치면 재가 울더라고 안회의 행실만 더 고쳐질 뿐이었다. 공자는 그런 안회를 일러 불천노(不遷怒) 불이과(不二過)라 했다. 논어 옹야(雍也)2 문장에 나오는 말인데 애공이 물었다. “제자 중에 누가 학문을 좋아합니까?”. 이에 공자가 답한다. “안회라는 자가 학문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없으니 아직 공부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 말 끝에 자로가 혼자말로 “요즘이 어느 시댄데 아직도 공부 타령이란 말인가” 이 말을 듣고 공자가 묻는다. “자네는 뭘 좋아하는데?” 이제 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할 때 이 말은 꼭 정치적 용어만은 아닐 터, 인성의 시작점이 수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가의 정치를 일러 수신에서 시작되지만 인성이 그 출발점이라하는 거다. 인성의 드러남은 늘 바름에 있고, 그 바름을 벗어날 때 비로소 치(恥)로 계도를 하는데 여기서 자기 검열인 스스로가 얼굴이 빨개지는 형벌이 내려진다. 사람이 부끄러운 짓 이전에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할 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곧 치(恥)의 계도에서 오는 자기검열이 주는 형벌인 셈이다. 사람만이 갖는 성품이다. 그러나 짐승은 자기검열 따위는 없다. 그래서 짐승은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저런. 짐승만도 못한 놈’ 이란 말이 예서 시작 된다. 맹자가 가장 염려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루는 맹자께서 방황하는 그의 고제(高弟) 고자에게 말한다(맹자위고자왈孟子謂高子曰). 산비탈의 좁은 길도(산경지혜간山徑之蹊間) 사람들이 오고간다면 탄탄한 길이 되지만(개연용지이성노介然用之而成路) 그마저도 없다면(위간불용爲間不用) 띠 풀이 자라서 길을 막아버리나니(즉모새지의則茅塞之矣), 지금 고자 네 마음이 그렇다(금모새자지심의今茅塞子之心矣). 이를 좀 더 쉽게 풀어놓은
선비가 치국을 꿈꾸는 계절이 가을이다. 물론 치국에 이르는 길은 수신과 제가가 먼저 선행 된다. 요즘이야 개나 소나 치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판국에 수신이나 제가라는 말이 무슨 의미나 있겠나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서는 여전히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들먹인다. 이는 곧 유학(儒學)에서 강조하는 올바른 선비의 길. 이기 때문이다. 이를 줄여서 수제치평(修齊治平)이라 한다. 대학(大學) 경 1장과 전 10장을 비롯 대학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다. 천하에 뜻을 둔 선비가 가장 먼저 할일은 뭘까. 어려서는 소학으로 삼절(三節)<쇄소응대진퇴지절灑掃應對進退之節>, 사도(四道)<애친경장융사친우지도愛親敬長隆師親友之道>를 익히고, 16세인 방년(芳年)에 이르면 대학으로 수제치평(修齊治平)을 이루는 공부를 한다. 그래서 삼절사도를 일러 수제치평(修齊治平)<개소이위수신제가치국평천하지본皆所以爲脩身齊家治國平天下之本>의 기본이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천하라고 하는 것이 뜻만 세웠다고 해서 거머질수 있는 것은 아닐 터. 천시(天時)가 맞아야 하고 그에 따른 인시(人時)가 따라줘야 한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천하를 거머쥔 자들의 신(新) 춘추
가난한 사람이 예를 잃으면 상스러워지고(貧者失禮及卑), 부자가 예를 잃으면 천박해 지고(富者失禮及賤), 남편이 예를 잃으면 어리석어지고(夫者失禮及愚), 아내가 예를 잃으면 화가 집에 미친다(妻者失禮家及禍). 송문습여록(宋門習與錄)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습여는 습여지장(習與智長 버릇은 지혜와 더불어 자라나고), 화여심성(化與心成 변화는 마음과 더불어 이룩된다)에서 출전으로 소학 초두 주자의 말이다. 군자는 남의 아름다운 점은 도와 이루게 하며, 남의 나쁜 점은 이룩되지 못하게 하지만 소인은 이와 반대다. <자왈子曰 군자君子 성인지미成人之美 불성인지악不成人之惡 소인반시小人反是.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 세상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라는 게 있다. 우리 사회는 이를 모르지 않지만 애써 지키려 들지는 않는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이러 일을 누구보다도 뼈아프게 겪은 중종 때 박세무는 손자 만큼은 이런 식으로 성장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손수 손자를 가르치기 위해서 수진본으로 성현의 명구를 엮는데 동몽선습(童蒙先習)이다.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 된다. 천지지간(天地之間) 만물지중(萬物之衆) 유인최귀(唯人最貴)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것들 중에서 오직
잘못을 했으면 고치는데 주저하지 말라는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현문에 조금은 아둔한 듯 한 제자가 “무엇이 잘못입니까?”라는 우문으로 되묻는다. 이에 스승은 꽤나 완곡한 표현까지 써가면서 말한다. “잘못을 했음에도 고치지 않는 것이 잘 못이다<과이불개시위과의過而不改是謂過矣 논어 위령공29문장>. 이 말은 저자거리의 장삼이사를 대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치자(治者)를 두고 이른 말이다. 백성이 원하는 곳으로 하늘도 이끌린다<민심지욕民心之欲 천필종지天必從之>는 서경(書經)의 말에 대한 공자(孔子)의 주석인 셈이다. 옛말에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꼭 맹자의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군주의 자리라는 것은 하늘이 정한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정한 기준이라는 것은 반드시 민심을 우선한다는 말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왕 노릇 제대로 못하면 도중에 갈아치운 경우가 더러 있었다. 연산군이 그중 하나요, 광해군이 그중 또 하나다. 근자에 와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갈아치워 버렸고, 그렇게 쫓겨난 한때의 대통령 박근혜는 측근들이 감방에 들어가서 형기를 마치고 나오는 만기 출소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아직 재판중이다.
춘추오패 중 한 사람 제환공(齊桓公)의 몰락은 인재 등용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제환공은 인재를 고르는 남다른 안목이 있었다. 젊은 시절 포숙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권좌에 오른 뒤에는 관중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그 결과, 천하의 패자라는 가공할 위치에 이른다. 나라는 부국강병을 넘어 백성들은 격양가를 불러야했다.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는 태평성대가 아닐 수 없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역아와 수초다. 역아는 제나라 궁중요리사로 제환공이 입맛을 잃었을 때 제 자식을 삶아서 요리로 바쳐 환심을 산 자이고, 수초는 미동(美童)으로 스스로 거세하고 제환공을 섬긴 자다. 죽음에 임박한 재상 관중은 제환공에게 충고하기를 저 두 놈을 절대 멀리하라고 한다. 그러나 제환공은 그리하지 않는다. 결과는 참혹했다. 이 둘은 작당을 해서 제환공을 말려죽일 것을 모의한다. 제환공 거처에 높은 담을 쌓아 물 한 모금도 넣어주지 않아 서서히 굶겨 죽였다. 패자의 나라 제나라는 그렇게 역사에서 몰락해갔다. 한미한 대부의 위치에 있던 위사(魏斯)는 위열왕(威烈王)으로부터 제후로 지목된 후 위문후(魏文侯)가 된다. 그는 이극(李克)을 등용해 법치를 확립했으며
우정팽계지우(牛鼎烹鷄之愚) 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 하편(下篇) 5문장(文章) 우경삼(右經 三)에는 오줌에 빠뜨리는 계책이라는 익뇨계(溺尿計)가 있다. 제나라 중대부 이사라는 자가 있어(제중대부유이사자齊中大夫有夷射者) 왕이 베푸는 만찬에 참석하여(어음어왕御飲於王) 심하게 취해 밖으로 나와서(취심이출醉甚而出) 복도 문에 기대어 있는데(의어낭문倚於郎門) 월형(발뒤꿈치 잘린 형벌) 받은 문지기가 배가고파 말하길(문자월궤청왈門者刖跪請曰) “중대부님께서 먹다 남은 음식이라도 주실 수 없습니까(족하무의사지여례호足下無意賜之餘瀝乎)”라고 하자, 이사 말하길(이사왈夷射曰) “시끄럽다 꺼져라(질거叱去). 월형을 받은 주제에(형여지인刑餘之人) 어디서 함부로 구걸하며 버릇없이 구느냐(하사내감걸음장자何事乃敢乞飲長者)”. 월형 받은 자가 저리로 도망해 물러나니(월궤주퇴刖跪走退), 이내 이사가 그 자리를 떠나자(급이사거及夷射去) 기분이 상한 월형 받은 자는 처마낙숫 물받이 물을 그리로 흐르게 하니(월궤인연수낭문류하刖跪因捐水郎門霤下) 마치 오줌 눈 것같이 되었다(류닉자지상類溺者之狀). 다음날 왕(장공莊公)이 나가다 꾸짖으며 말하길(명일왕출이가지왈明日王出而訶之曰) “누가 여기다
<우농의 세설> 너는 우리 임금이 아니다 하루는 우(禹)임금이 백성들의 삶을 보고자하여 민복 차림으로 암행순찰을 하던 중 행색이 초라한 촌로가 관원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어 관원에게 달려가 잡혀가는 촌로의 죄를 물으니 이 무지한 백성이 사흘을 굶어 이웃집 닭을 훔쳐 먹었다는 것이다. 범죄가 생계수단이 된 촌로를 바라보는 우임금의 마음은 짠했다. 백성의 잘못은 임금인 자신에게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요(堯)임금은 7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고, 순(舜)임금은 33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는데 하늘을 찌르는 태평성대인지라 길거리에 보화가 떨어져도 주워가는 이 없고(보사불습寶舍不拾), 백성들은 격양가를 부르며 놀았다한다(격양지유擊壤之遊). 이는 곧 임금이 착하니 백성들도 그 마음을 닮아서 착했다는 말이다(상선하효上善下效). 이에 우임금은 이는 모두 과인의 부덕의 소치인 탓이라며 선처를 바랬다. 일찍이 요임금은 순에게 왕위를 선양하면서 윤집궐중(允執厥中진실로 그 중심을 잡으라: 오직 백성만을 위하라) 만을 당부했고, 순임금은 우에게 왕위를 선양하면서 윤집궐중에다가 부 안설을 더하는데 “인심은 위태롭고,
재판거래라니… 법을 어긴 자를 잡는 일은 반드시 엄격하게 해야 하나니(포망필엄捕亡必嚴), 엄격하게 하면 죄를 범한 자가 빠져 달아날 수 없게 되고(엄즉범자부득이탈루嚴則犯者不得以脫漏), 범죄를 처단하는 일에는 반드시 관대하게 해야 하나니(단옥필서斷獄必恕), 관대히 하면 형벌을 받는 자가 억울한 일 당하는 일이 없게 된다(서즉형자부지어왕굴恕則刑者不至於枉屈). 이는 모든 법 중에서 가장 좋은 법이라 할 수 있다(차개법지량자야此皆法之良者也). 그러나 법 자체만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연법비종선然法非從善). 오직 운용하는 사람을 제대로 얻어야한다(유재득인惟在得人).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포망단옥편捕亡斷獄篇> 서경書經 우서虞書 순전舜典에서 왈, “그러므로 조심스럽고 조심스럽게 형벌을 구휼한다(흠재흠재유현지휼재欽哉欽哉惟刑之恤哉). 성인의 경계함은 이처럼 심오했다(성인지계심의聖人之戒深矣). 이는 곧 밝고 신중한 덕을 갖춘 다음에라야(명신지덕후明愼之德後) 그 좋은 법을 시행 할 수 있는 것이다(가이행기량법야可以行其良法也). <주역(周易)비괘賁卦대상大象> 법치국가에서 법을 쥔 자들은 갑중에 갑이다. 더군다나 법관임에는 더 말해 무엇 하리. 문제는 그
국민 상대로 전기요금 고리(?) 뜯는 국가 폭염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에어컨 가동은 더 이상 사치나 호사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문제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냉방기기 사용이 국민의 기본적인 복지라는 점을 들어 국민이 전기요금 걱정 때문에 냉방기기를 제대로 사용 못하는 일이 없도록 방안을 강구하라 했단다. 대통령 말씀의 방점은 전기요금 누진제 폐지가 아니라 ‘방안을 강구’란 점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에어컨 설치를 기본적인 복지로 간주하는 일본의 에너지 정책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뒷맛이 개운치 않음은 아마도 전기요금누진제 완전폐지라는 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송나라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겠다(조삼이모사朝三而暮四)고 하자 원숭이들은 모두 화를 냈다(중저개노衆狙皆怒).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주겠다(연즉조사이모삼然則朝四而暮三)고 하자 원숭이들은 모두 기뻐하였다(중저개열衆狙皆悅>). 이를 본 사람들은 “원숭이의 이런 행동을 금수라 어쩔 수 없군.”이라며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나무란다. 아침에 세 개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든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현직은 전직을 반면교사 삼으라. 협(頰)과 안(顔)은 다르다. 협은 볼이고 안은 얼굴이다. 얼굴에는 용(容)이 있다. 이는 안과달리 얼굴의 윤곽 즉 테두리를 말함이다. 그래서 용안이라 할 땐 얼굴 안과 밖 전체를 말함이다. 얼굴에 부끄러움이 시작되는 지점을 빈협(嚬頰)이라 하는데 그 중심은 뺨 혹은 볼이라는 협(頰)이다. 협은 사람만이 갖고 있는 특성으로 사람에게 유일하게 부끄러움의 시작점이다. 동양권에서는 부끄러움을 치(恥)라 하는데 황정견(黃庭堅)의 제자 표숙(表叔) 범중온(范仲溫)에 따르면 치(恥)는 치(治)의 모어(母語)라 한다. 볼에서 시작된 부끄러움이 귓불을 타고 내려가 심장까지 전해지는 것이 부끄러움이다. 이를 경전 속에 무수오지심(無羞惡之心) 비인야(非人也)라는 말로 명토 박아 명문화 한 이가 맹자다. “부끄러움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 쯤으로 보면 된다. 수(羞)는 양(羊)과 손을 뜻하는 축(丑)의 합성자로 두 개의 뜻을 가진다. 손을 펴면 우(又)이고, 오므리면 축(丑)이다. 그러므로 수(羞)의 본의는 진수성찬(珍羞盛饌)이라는 글자에서 조차 수(羞)자가 들어있는 것처럼 양고기를 바치다가 맞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이란 글자로 전해진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참모진은 국민과의 약속지켜라 나이 먹는 게 죄는 아니다. 하지만 자꾸만 죄인이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면 그건 분명 내 탓만은 아닐 터. 정치의 잘못일 것이다. 정치란 여타의 이론들처럼 힘들고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저 국민을 잘 먹고 잘살게 해주면 되는 일이다. 50살이 되면 비단옷을 입고, 70살이 되면 고기 국을 먹는다는 2000년 훨씬 이전 맹자의 말이 있다. 이 말에서 필자는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못나고, 무능하고, 제 잇속만 차리는 보기 싫은 꼴들이 읽혀진다. 나이 오십에 비단옷은 고사하고, 70늙은이가 고기 국은 무슨 얼어 죽을……허리가 바짝 꼬부라진 채로 힘겹게 폐지 박스를 싣고 고물상으로 가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혹시 우리들의 불안한 미래의 자화상은 아닐는지, 생각이 들기 시작한지 오래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 중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공약을 못 지켜 죄송하다는 뉴스가 떴다.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려면 아직 반환점도 안 지난 상태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약속을 벌써부터 깨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결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아무리 세상이 죽은 아들 불알 잡는 격이고 하지만 국민과의 약속을 이런 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