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오패 중 한 사람 제환공(齊桓公)의 몰락은 인재 등용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제환공은 인재를 고르는 남다른 안목이 있었다. 젊은 시절 포숙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권좌에 오른 뒤에는 관중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그 결과, 천하의 패자라는 가공할 위치에 이른다.
나라는 부국강병을 넘어 백성들은 격양가를 불러야했다.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는 태평성대가 아닐 수 없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역아와 수초다. 역아는 제나라 궁중요리사로 제환공이 입맛을 잃었을 때 제 자식을 삶아서 요리로 바쳐 환심을 산 자이고, 수초는 미동(美童)으로 스스로 거세하고 제환공을 섬긴 자다. 죽음에 임박한 재상 관중은 제환공에게 충고하기를 저 두 놈을 절대 멀리하라고 한다. 그러나 제환공은 그리하지 않는다. 결과는 참혹했다. 이 둘은 작당을 해서 제환공을 말려죽일 것을 모의한다. 제환공 거처에 높은 담을 쌓아 물 한 모금도 넣어주지 않아 서서히 굶겨 죽였다. 패자의 나라 제나라는 그렇게 역사에서 몰락해갔다.
한미한 대부의 위치에 있던 위사(魏斯)는 위열왕(威烈王)으로부터 제후로 지목된 후 위문후(魏文侯)가 된다. 그는 이극(李克)을 등용해 법치를 확립했으며, 오기(吳起)를 기용해 부국과 강병의 초석을 다진다. 그 결과, 위나라는 전국시대 초기 가장 강성한 나라로 자리매김을 한다. 그런데 그의 손자인 혜왕(惠王)이 제위에 오르면서 나라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부국강병을 바라지 않아서가 아니라 혜왕이 인재를 쓸 줄 몰랐기 때문이다.
당시 명재상 공숙좌(公叔座)는 죽음에 이르러 인재를 추천하는데 자신의 집에 머슴일보고 있는 중서자(中庶子) 공손앙(公孫鞅)을 후임으로 쓰라는 유언이다. 만약에 그를 쓰지 않으려거든 반드시 죽이든가 나라 안에 붙잡아 두던가 해야 나라에 후한이 없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나 혜왕은 “일개 머슴 따위를…”이라며 그를 등용하지도 않고 나라 안에 붙잡아 두지도 않고 죽이지도 않는다. 이때 진(秦)나라에 진시황제의 4대 조부 진 효공(孝公) 영거량은 구현령(求賢令)을 내려 천하의 인재들 불러들였다.
공손앙은 진효공 영거량에게 발탁되어 진시황제 천허통일의 단초를 만든다. 그 공적으로 상(商)땅을 봉읍으로 받았으며, 세상은 그런 그를 상앙(商鞅)이라 불렀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 통치술을 TV로 보면서 문재인의 대통령노릇에 명불허전이랄까.<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