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에게
―엠마 골드만
강민숙 시인
오늘 내가 법 앞에 선 것은
오늘의 법이 아니라
내일의 법 앞에 선 것이니
내일의 법으로 심판해 주시오
배심원 여러분
우리는 많은 사고의 틀을 깨 왔습니다
옛날 우리 싸움은
창은 활로 활은 대포로,
대포는 다시 미사일로
옷을 바꿔 입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니 나를 불안의 눈빛으로만 보지 마십시오
배심원 여러분
지금처럼 나라가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짓밟는다면
노동자들은 땅굴 파는 두더지가 되란 말입니까
이제 정부도 생각을 뒤집어
노동자와 여성을 인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더 이상 노동자는 자본가의 먹잇감이 아니며
여성은 자궁 열어 놓고
아이를 펑펑 찍는 공장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의 틀을 바꾸려고
거리로 나와 외치는데
왜 우리에게 돌팔매를 던지는 겁니까
법이, 법이 아닌
이 시대에.
※ Emma Goldman(1869~1940), 아나키스트 정치 활동가이자 작가.
강민숙 시인
전북 부안 출생. 동국대 문예창작과 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박사학위. 1992년 등단, 아동문학상 허난설헌문학상, 매월당문학상, 서울문학상 수상.
시집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 「그대 바다에 섬으로 떠서」, 「꽃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둥지는 없다」, 「채석강을 읽다」, 「녹두꽃은 지지 않는다」 외 10여 권의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