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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세계 1위의 특성화 대학을 만든다

Close-up|용인대학교 총장 김정행
경호·문화재보존·동양무예학과 등 선도적 개설
체육 명문으로 용인과 대한민국 홍보에 일등공신

   
 
용인대학교는 들여다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학교다.
개설돼 있는 학과마다 이색적이면서도 경쟁력이 쟁쟁하다는 느낌이 확 와 닿는다. 누구나 선택하고 싶은 과목들이 줄줄이 개설돼 있다.

블루오션이라는 말이 용인대학교의 개설 학과에서 비롯된 말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다.
“우리나라의 교육 정책도 그렇지만 특성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듭니다.”
용인대학교에서만 43년을 봉직한 김정행 총장(64). 국내 최초로 총장 4연임에 국내 최장 기간인 16년을 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그는 진단과 처방이 확실한 CEO다.

전통적인 강점과 상대적 우위 분야, 미래의 가능성 등을 고려한 특성화 전략에 따라 시선을 모으는 학과를 구성하니 용인대학교의 경쟁력이 어떠하리라는 짐작이 간다.

경호학과, 문화재보존학과, 동양무예과 등 타 대학에 개설돼 있지 않은 학과들의 선도적 개설을 통해 100% 취업률을 보장하며 학교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단과대학인 무도대학도 국내에서 유일하다.
용인대학교에서 세상에 필요한 인재들로 무장된 학생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즉시 적재적소에 신속하게 투입돼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 한다.

머리에 용인대학교의 발전 전략과 구상이 가득한 김정행 총장. 용인대학교와 따로 떼어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인물.

김 총장은 61년 용인대학교의 전신인 대한유도대학 유도학과 신입생으로 입학해 졸업 후 조교, 교수를 거쳐 오늘날 총장에 이르기까지 용인대학교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용인대학교를 위해 태어났고, 용인대학교도 그를 위해 설립된 것 같은, 김정행과 용인대학교는 하나다.

# 세계 홍보 용인대학교가 한다
1967년 동경유니버시아드 대회 은메달, 제 6, 7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 한국대표 출전, 대한유도회 지도위원 및 심판위원, 국가대표 유도감독, 국제유도연맹 국제심판 자격 취득, 국제 유도연맹 총회 회의 대표….
김 총장이 한창 젊은 시절, 용인대학교 교수직을 하며 유도 필드에서 펼친 활약상이다. 수없이 많아 일일이 적을 수 없을 정도다.

불같이 열정적으로 살아온 그의 유도 인생은 현재 동아시아유도연맹 회장, 아시아유도연맹 회장, 범태평양유도연맹 회장, 아시아체육교류연맹 이사장 등 일본 중국을 제치고 동양 무예계의 세계 수장으로 자리한다.
이는 개인 차원의 명예일 뿐만 아니라 용인대학교, 더나가 대한민국을 세계 유도의 중심에 놓는 일이다.
김 총장은 가히 체육 외교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체육 명문 용인대학교를 세계인의 중심에 보란 듯 갖다 놓는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홍보도 저절로 이뤄지게 한다.

김 총장은 설립 초창기부터 유도 태권도 등 무도가 중심인 대학교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국내 유일하게 무도대학을 신설했고, 유도를 간판학과로 키워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숱한 지도자를 배출해 미국에서 1000여명이 활동하고 있고, 중국 쪽에도 태권도 교관으로 50여명이 활동한다.
무도 하면 동양인데다가, 용인대학교의 눈부신 활약상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해마다 용인대학교에서 유도 태권도를 배우고 가는 외국인이 5000~6000명에 이른다.

“유도 스포츠 분야의 명문이라는 명성은 국내보다 국외에 더 잘 알려져 있어 무예를 연마하고 배우기 위해 많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용인대학교를 찾고 있습니다.”
이들은 보통 수개월에서 1년 단위로 장기간 체류하게 되는데, 보통 용인대학교의 외국인 전용 기숙사 시설에서 묵는다.

그러나 점점 인원이 늘면서 숙소가 빈약해져 ‘게스트 하우스’ 신축이 시급한 실정이다.
“국내에서든 외국에 나가서든 잠자리가 편해야 합니다. 외국인도 용인에 오면 잠자리가 편해야 하는데 숙소 기반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숙소 환경을 좋은 분위기로 만들고 싶은 게 나와 대학 구성원의 바램입니다.”

최근에는 베이징 올림픽의 전초기지로 용인대에서 합숙하겠다는 의뢰가 많다. 그래서 더욱 게스트 하우스에 대한 염원이 크다.
현재 용인시와 게스트하우스 건립을 위한 협약서를 체결한 상태로 4000여평의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5200평 규모로 호텔급 객실과 컨벤션 회의실, 연회장, 헬스클럽 등을 갖출 예정이다.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내년 4월 이지만 현실적인 걸림돌이 많이 남아 있다.

“유명하다고 해서 저절로 오지는 않지요. 저희 학교 해외 마케팅이 매우 활발합니다. 총장인 저는 해외에 수시로 나갑니다. 저와 대외협력부서에서 홍보도 하고 실지 현지에 나가 그 분야의 교수로도 참여하고 연구도 하는 노력에 의해 이뤄집니다.”

우리나라의 무도와 스포츠과학을 세계적인 학문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독일 른대학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 대만, 미국, 호주 등 세계 유수의 명문대학들과 활발하게 교수, 학생 교환프로그램 및 연구교류 활동을 벌이는 것도 중요한 마케팅이다.

용인대학교 총장배 태권도 대회도 해외에서 개최한다. 올해 3회째 치르게 되는데 1회는 하버드대에서 치렀고, 2회는 시카고, 올해 3회 대회는 워싱톤에서 치르게 된다.
“용인대학교의 유도는 세계적이기 때문에 외국인도 유도로 인해 ‘용인’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대한민국 세계 홍보는 용인대가 한다는 자부심이 있지요.”
“얼마 전 직원이 이태리에 갔는데 다른 대학은 몰라도 용인대학교는 안다고 했다고 합니다.”

# 용무도 창시
김정행 총장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무도를 개발해 서양에 전파하겠다는 계획으로 용무도를 창시했다.
유도 태권도 검도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의 장점을 종합한 교육적이고 실천적인 호신 무술체계로서, 무도 정신과 용인대학교의 건학 이념인 도의(道義)정신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용무도는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성행하고 있으며 미국의 각지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범단이 캐나다나 미국 등지에서 용무도를 선보이고 있고, 내년에는 대한체육회에 가맹한다. 올해 8월 정도에 세계대회를 용인대학교 교정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머지 않아 용무도가 용인대학교의 교육 이념과 무도 사상을 세계에 보급하고, 스포츠 교육의 초일류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 예술대학
“원래 용인대학교는 처음 개교할 때 체육인에 의해 학교가 만들어 졌죠. 대한유도대학으로 시작된 용인대학교는 대한체육과학대학을 거쳐 1992년 종합대학교로 승격합니다. 종합대로 승격할 때 체육과 접목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이냐를 고민했어요. 예술이었죠.”

당연히 유도 태권도 등 체육이 강세지만 용인대학교는 예술대학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예술대에도 쟁쟁한 교수진이 포진되면서 예술대의 면모도 부각 돼 있다.
체육과 예술의 쌍두마차인 셈이다.

영화영상학과나 국악과 문화재보존학과 디지털미디어학과 등 예술대의 학과들이 빛난다.
김 총장이 취임하면서 용인대학교는 5개 단과대학 시스템을 갖췄다.
무도대학, 체육과학대학, 예술대학, 산업정보대학, 자연과학대학이 그것이다.
“체육 예술분야는 자신합니다. 특히 무도대학의 경우는 일본 국제무도대학보다도 우위에 있습니다. 중국도 체계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세계 1위입니다.”

그의 체육 외교는 저절로 이뤄진 게 아니다. 이처럼 용인대학교를 국내 체육 명문을 만드는 일로부터 시작했다.
“체육, 무도하면 용인대학교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학교의 특성화 전략이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 있고 오래된 대학에 우수 인재들이 다 들어간 후 남은 학생들이 우리대학에 오는 것은 곤란하지요. 지금 용인대의 체육, 무도 분야는 최고 인재들의 집합체 입니다.”

체육, 무도 분야의 특성화 전략을 통해 국내 명문으로 우뚝 선 용인대학교.
“체육 무도 분야 하면 용인대에 가서 물어보라고 할 정도로 경쟁력이 있지요.”
오랜 전통에 기반 해 이론과 실기를 겸비해서 학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용인대학교 특성화 전략의 핵이다.
자연·인문과학 분야도 스포츠와 연계해 독특한 교육프로그램으로 특화시켜 나가고 있다.
체육 과학 이론을 정립했고, 국제과학스포츠연구원을 통해 스포츠 과학을 이끌고 있다.
이에 따라 체육 계열의 입학생만 600명이 넘는다.

다른 종합대의 경우 40여명 정도인 것에 비하면 체육 메카의 모습을 확실히 보여준다.
체육 계열 졸업생 수도 많고 국내 교수로도 100여명이 진출했다. 대한민국 유도 인구의 80%를 배출하고 있다.
서울에서 바디빌딩 하는 인구의 70%가 용인대학교 출신이다. 태권도 유도 용무도 도장도 용인대학교 브랜드가 전국에 2000개가 넘는다. 용인대학교 체육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 김정행 총장
신장 171cm. 남성의 키로는 단신에 속하는 김 총장.
왜소한 체격은 유도를 하는데 있어 좋은 조건이 못된다.
그런 그가 유도에 입문해 유도의 세계적 수장이 되기까지는 그의 피나는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포항에서 출생한 그는 운수업과 어업을 하는 유복한 집안의 6남매 가운데 유일한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에서는 김 총장에 대해 거는 기대가 컸고 상대를 가서 가업을 잇기를 바랬다.

그러나 김 총장은 중3때 초대 포항시장을 지낸 문달식씨가 개설한 유도관에 나가면서 부모의 뜻과는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유도 6단의 고단자이며 인격자였던 그를 흠모해 자신도 커서 그렇게 멋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포항 보경사라는 절에서 유도시범을 보고는 더욱 유도에 심취했다. 마침내 유도를 하기 위해 포항 동지고에서 유도 명문인 대구 대건고등학교로 전학까지 했다.

그러나 유도를 늦게 시작한 그는 대건고에서 실력이 부족해 큰 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가 용인대학교의 전신인 대한유도대학에 들어간다고 하자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에 입학한 그는 65kg의 빈약한 체구에 꼴찌로 입학을 했다.

당시 유도대에는 동기생 중 가장 실력 있는 2명을 교수요원으로 선발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꼴찌 입학한 김 총장은 1등 졸업에 뜻을 뒀다. 어려서부터 남한테 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던 그는 결국 1등 졸업의 뜻을 이뤘다.
처음 수업시간에는 맨날 넘어가는게 고통스러워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한번 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밤잠도 자지 않는 성격의 김 총장은 남들의 두배는 훈련하겠다는 의지로 버텼다.
초지일관이 좌우명이었던 그는 팔이 짧은 팔로 덩치 큰 선수를 이기려면 팔 힘을 키워야겠다고 마음먹고 금속 바벨이 없던 시절, 돌 역기를 남들이 10개 들면, 그는 40~50번을 들었다.

군에 입대해서 보초 근무를 할 때도 보초 시작부터 끝까지 M1 소총으로 팔 운동을 했다. 무게 4.37kg의 소총을 한 시간 내내 당겼다 폈다 하는 운동을 하고 나면 나중엔 자신의 팔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체격적으로는 악조건이었지만 빠르고 순발력이 있는데다 유연성 있는 근력의 바탕이 있었기에 피나는 훈련을 거듭하면서 그는 대학 졸업반 무렵 라이트헤비급(93kg급) 선수로 뛰었다. 대학 4년동안 무려 30kg의 근육을 만들어낸 그는 팔 힘을 이용한 기술로 한판에 승리를 거머 쥐곤 했다.

마침내 동기생 신석기(미국 오마하대 교수)와 교수 요원이 될 수 있었다.
학교에 남은 그는 조교(65년)로부터 시작해 조교수(76년), 부교수(81년)를 거쳐 86년 교수에 이르고, 81년에는 동 대학교 학생처장, 90년에는 기획실장, 92년 부총장 겸 기획실장을 역임 한 후 94년 당시 52세로 용인대학교 2대 총장에 취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는 학교에 남아있으면서 세계 선수권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71년까지 3차례 세계선수권 대표로 출전했다. 당시 각국이 2명씩 출전하는 세계선수권 보다는 1명씩만 출전하는 올림픽 메달이 훨씬 쉬웠지만 그는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다.

64년 도쿄대회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던 유도가 그의 전성기인 68년 멕시코 대회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 초지일관의 뜻
“저는 가정보다도 용인대학교에서 평생을 지냈습니다. 초지일관 학교만을 생각했어요. 저 뿐만이 아니라 우리 교직원 모두가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진다면 학교가 발전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봅니다. 내가 걸어왔던 길을 떳떳이 얘기하고, 용인대학교에 봉직한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교직원도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김 총장의 신조인 초지일관. 늘 변함없는 마음으로 학교를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 모범을 보여야겠다는 각오. 그의 모습을 보고 교직원과 학생 모두가 초지일관의 뜻을 세워 최선의 노력을 해주기만을 그는 바란다.

총장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던 것도 초지일관의 변함없는 인품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그의 변함없는 열정이 용인대학교의 미래를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